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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17. 2018

어느새 이 곳에도







조용한 시골 마을에도 어느새 봄이 닿았다. 잔잔한 시냇물에 부서지는 햇빛이 제법 눈부시다.


봄이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갈 것 같은 이 곳에서 가장 바쁜 계절이 왔다. 군불 뗀 따뜻한 아랫목에서 낮잠 자던 여유가 사라지는, 정신없이 바빠질 깊은 봄을 준비하는 3월.






외갓집 마당에 있는 스티로폼 텃밭. 오래전부터 부추나 고추 등을 심어왔다. 부추는 수확한 후에도 계속해서 잎이 올라오기 때문에 관리만 잘해주면 계속 먹을 수 있다. 참으로 고마운 식재료다. 3년 정도 먹다 보면 부추 잎이 가늘어지는데, 썩은 뿌리를 정리하고 더 큰 곳으로 옮겨 심어주면 된다. 옮겨심기를 하고 며칠 후, 기특하게도 새싹이 올라왔다. 옆 화분의 옮겨 심지 않은 부추는 벌써 손가락 하나만큼 자랐다.






겨울이 끝나고 우선 할 일은 다음 겨울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코모리에서 산다는 건 그런 일들의 반복이다.

-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중






씨감자는 토막 내어 재를 묻혀준다. 썩는 것을 방지하고 병충해를 막기 위함이다. 작년 이맘때와 다를 것이 없는 일상. 시골에서의 삶은 반복이다. 다음 계절에 먹을 것들을 준비하고 수확하는 일들의 연속.






으로 가는 길에 만난 이웃집 축사의 순둥이들. 호기심이 많은 녀석들은 사람이 올 때마다 가까이 다가와 그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거린다. 얼굴을 쓰다듬어주면 가만히 손길을 받아들인다.




완두콩. 보리를 수확할 때 쯤 따먹어서 보리콩이라고도 불린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마늘, 상추, 콩이 제법 자랐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 오자마자 싹을 틔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그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낙오 없이 모두 흙을 뚫고 나왔다. 기특하고 고마운 것들이 가득한 이른 봄날.






수줍게 모습을 비추는 쑥과 따사로운 볕 아래 벌써 꽃을 피워낸 냉이. 아무것도 없이 황량했던 곳에 옅지만 싱그러운 초록 생기가 돈다.




봄까치꽃



들에는 청보라색 융단이 깔렸다. 봄의 전령사 '봄까치꽃'이다. 아, 정말 예쁜 이름이다. 봄을 전하는 까치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봄만큼 기쁜 소식이 또 있을까.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은 자세히 보면 더 예쁘고 싱그럽다. 너무 작기 때문일까. 꿀벌들이 머무르지 않고 잠깐 앉아 도장만 찍고 간다. 이토록 작디 작은 꽃 곳곳에 기쁜 소식을 전하며 초봄을 새파랗게 물들인다.






홍매화도 통통한 꽃봉오리를 맺었다. 손대면 팡하고 터질 듯한 모습이 아름답다.






냇가에 버려둔 마늘에서 싹이 났다. 놀랍고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조심스레 뽑아서 스티로폼 텃밭 한쪽 구석에 심어주었다. 생명이란...... 실로 놀랍다. 고난을 이겨내고 싹을 틔운 마늘에게 할 수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토록 조그마한 생물에게도 배울 점이 있구나!






숲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지만, 고목에 붙은 이끼는 더욱 진한 초록색이 됐다.






이젠 해 질 녘도 춥지 않다. 따스한 햇살이 구석구석 손을 뻗어 하루 끝인사를 건넨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먹는 외갓집의 저녁. 반찬통째 꺼내놓은 꾸밈없는 밥상. 할머니표 육수에 늦가을 말려둔 시래기 넣고 끓인 된장국은 말 그대로 명품이다. 진하고 깊은 맛. 어떻게 이런 맛이 날까 감탄하며 먹다 보니 어느새 한 공기를 뚝딱했다. 언제 봐도 귀여운 간장 종지는 보너스.





봄비가 대지를 적신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흙을 파고 스며들어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잠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생명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면, 이 곳의 시간은 더 바삐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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