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시작되는 치유의 비밀
PINCH.POINT
당신은 병원 로비에 앉아 있다. 같은 치료비, 같은 의료진 실력.
그런데 어떤 병원은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지고, 어떤 병원은 괜히 마음이 편안하다.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최근 한 치과 원장님과 상담을 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대부분의 병원이 브랜딩을 불필요하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합리적인 가격, 빠른 진료, 어느 정도의 친절함만 갖춘다면 만족하는 편이고, 의사는 진료만 잘보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동향은 확실히 다르다.
메디컬 서비스가 넘쳐나는 시대. 환자들도 이왕이면 '더 좋은' 병원을 찾는다.
그래서 많은 병원들이 차별점 경쟁에 뛰어든다.
최신 장비, N년차 경력, 화려한 학벌, 365일 운영, 파격적인 가격 등..
그런데 정작 환자들의 재방문을 결정하는 건 따로 있다.
병원 브랜딩의 효과는 감성적 만족에 그치지 않는다. 구체적인 경영 성과로 이어진다.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고객 경험 개선에 집중한 헬스케어 브랜드들이 5년 동안 최대 20%의 매출 증가와 서비스 비용 30% 감소를 달성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또한 한 헬스케어 브랜드는 사용자 경험 개선을 위한 디지털 변환을 통해 디지털 채널에서 신규 환자 수를 3배 증가시켰다는 성과도 보고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환자들의 인식 변화가 있다.
브랜드 경험에 만족한 환자들은 이미 사용하고 있는 브랜드를 바꿀 확률이 28% 낮아진다는 것이다.
브랜드 신뢰도가 높을수록 고객 유입은 늘어나고 마케팅 비용은 줄어드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 병원들을 어떤 방법을 쓴걸까?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환자 우선(Patients First)' 철학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방식을 보자. 이들은 단순히 병원을 짓는 게 아니라 '치유 환경(Healing Environment)'을 창조한다.
2016년 개원한 클리블랜드 클리닉 암센터의 데이터가 말하고 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대형 창문, 지하층까지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천창 설계. 접수 공간은 빛으로 가득 채우고, 주입실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창문을 설치했다.
결과는? 환자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측정 가능할 정도로 감소했고, 환자 만족도가 업계 평균을 크게 상회했다.
메이요 클리닉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Bold. Forward. Unbound' 전략으로 병원 인프라의 미래를 재정의하고 있다.
2024년 메이요 클리닉이 발표한 새로운 설계 방침에 따르면, 병실의 자연광을 대폭 증가시키고, 환자의 음성 명령으로 조명과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한다. 무선 생체 모니터링으로 환자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실시간 건강 정보를 수집한다.
메이요 클리닉이 지속적으로 높은 환자 만족도를 유지하는 비결은 단순히 의료 기술만이 아니다.
환자 중심 여정 지도(Patient Journey Map)를 통해 발견한 것은, 의료진과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조직적 요인들이 환자 경험을 좌우한다는 사실이었다. 환자의 우려사항을 적극적으로 듣고,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 의료진일수록 환자 만족도가 높았다.
국내에서도 브랜딩의 힘을 증명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스마트 병원 시스템은 환자 경험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브랜딩의 대표적 사례다. 모바일 앱을 통한 예약부터 QR코드 접수, 실시간 대기 시간 안내, 키오스크 자동 수납까지 모든 접점에서 일관된 디지털 경험을 제공한다.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뉴스위크가 발표한 '2025년도 월드베스트 스마트병원' 순위에서 18위를 차지했으며, 4년 연속 국내 병원 중 '가장 스마트한 병원'으로 선정됐다. 스마트 물류 시스템 도입으로 병상 배정 딜레이가 2시간에서 1분으로, 낙상 고위험 조기발견 시간이 2분에서 10초로 단축되는 등 눈에 띄는 운영 효율성 개선을 보여주고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더 세밀한 접근을 보여준다.
입원 환자용 파자마부터 병실 어메니티까지 디자인을 통일해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 쓴다'는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한다. 병원 로비의 카페와 편의시설도 일관된 디자인 언어로 통합해 '치료받으러 오는 공간'이 아닌 '돌봄받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세브란스병원은 한국생산성본부가 주관하는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2011년 이후 4년 연속 병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환자 중심을 기준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 혁신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결과다.
아산병원의 경우, 2020년부터 시작한 '환자 중심' 브랜딩 전략이 팬데믹 시기 오히려 경쟁력을 높였다. 비대면 진료 시스템과 연계된 브랜드 경험 설계로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서의 차별화를 이뤄내고 있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가 적은 통증으로 금방 낫기를 바랄 것이다.
브랜딩이 잘 된 병원에서는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치유가 시작된다. 공간 자체가 약이 되고, 경험 자체가 치료가 된다. 어떤 병원은 왜 덜 아플까? 의료 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환자의 감정과 기대를 조율하는 세밀한 전략이 숨어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편안했던 병원을 떠올려보라. 정확히 무엇이 달랐는지 이제 알 것이다.
병원 브랜딩의 핵심은 '치료하는 공간'이 아니라 '치유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브랜딩을 통해 단지 '예뻐진' 병원이 아니라, 환자가 자연스럽게 '여기가 맞다'고 느끼는 병원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일관된 경험이 쌓여 '이 병원은 진짜 다르다'는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
성공적인 브랜딩은 결국 환자에게는 치료 이상의 가치를, 병원에게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져다주는 힘이 될 것이다.
결국 브랜딩이란, 환자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모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모든 순간이 조율되어 하나의 경험으로 완성될 때, 비로소 진짜 다른 병원이 탄생한다.
PINCH. Director K
Director K는 유연한 사고와 깊은 공감력으로 사람과 브랜드 사이의 미묘한 접점을 포착하고,
그 본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스토리텔러입니다.
McKinsey (2023). "Marketing in healthcare: Improving the consumer experience"
Mayo Clinic Patient Experience
삼성서울병원 스마트병원 성과: 의료기기뉴스 (2024)
삼성서울병원 스마트병원 운영 효율성: 메디게이트뉴스 (2023)
세브란스병원 국가고객만족도 조사 결과: 메디컬옵저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