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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e Aug 22. 2019

5. 인민학교에서

6.25전쟁 70주년을 맞으며

유치원을 졸업한 나는 인민학교에 입학했다. 신입생 대표로 토론을 하다 보니 졸지에 학급반장으로도 임명됐다. 북한에서는 학급반장을 선거로 뽑는 게 아니라 담임선생 마음대로 임명한다. 인민학교에서도 반미, 반한교육은 여전했다. 오히려 유치원생보다 인지능력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좀 더 높은 차원의 세뇌교육이 진행됐다. 반미, 반한교육의 핵심은 당연히 6.25전쟁이었다. 6.25전쟁은 “오래전부터 한반도 침략을 호시탐탐 꿈꿔오던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괴뢰도당을 부추겨 일으킨 북침전쟁”이라는 것이다. 


해마다 6월이 오면 북한 당국에서 벌이는 행사가 있다. 6월과 7월은 북한에서 “미제반대투쟁의 달”이다. 6.25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미국과 한국이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벌인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그래서 6월이 오면 인민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고등중학교, 대학교 학생들과 북한군인들, 직장인들, 농민들, 여맹원들을 다 동원해 웅변대회와 미술, 그림대회를 연다. 주제는 6.25전쟁과 반미, 반한주의이다. 인민학교 때 웅변대회에 몇 번 나가서 상을 탄 적도 있었다. 


“오래전부터 조선침략의 마수를 뻗쳐오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미제국주의자들은 조선반도를 아시아 침략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야망 밑에 공화국에 대한 침략전쟁계획을 세웠습니다. 미제침략자들은 남조선 괴뢰도당을 부추겨 공화국 북반부 주민들이 다 평화로운 단잠에 든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이른 새벽 5시에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불을 질렀습니다. 38도선 전역에서 북침전쟁을 개시한 침략자들은...” 


6월이면 북한 전역에서는 이런 격조 높은 목소리가 울렸고 많은 사람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복수를 다짐하곤 했다. “US” 표시가 있는 철모를 쓴 미군과 한국군이 북한군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되는 그림들이 학교 복도를 도배하곤 했다. 미군과 한국군이 북한 주민들을 총검으로 찌르고 톱으로 베고, 사지를 찢어 죽이는 잔인한 모습의 그림들도 넘쳐났다. 아직은 세계관이 채 굳어지지 않은 7살~11살의 아이들에게 미국과 한국은 한 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였고 기어이 복수해야 할 대상이었다.


북한 평성시 덕성소학교 복도에 그려진 반미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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