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주년을 맞으며
북한은 6.25전쟁 중 벌어진 대전전투를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을 보여준 전투로 자화자찬하면서 교범에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북한의 교육에 의하면 당시 대전은 “임시수도”로 선포돼 있던 주요 도시였다.
북한군은 적은 병력이었지만 김일성이 유격전법으로 논산방면으로 진출하던 북한군 한 개 연대를 우회시켜 대전포위를 완성함으로써 서방 군사가들도 아직까지 대전포위전투는 불가사의로 분석한다고 한다. 이때 북한군은 완전군장을 하고 하루밤 사이에 100리길을 행군해 대전포위를 완성했다고 한다.
또 시내에 북한군 전차를 선견대로 들여보내 교란작전을 벌여 미군을 혼비백산케 했다고 자랑한다. 7월 14일부터 7월 21일까지 벌어진 대전 전투에서 미 제24사단은 완전히 괴멸되고 사단장인 딘 소장은 사병복장을 하고 도망치다 북한군 병사에게 포로 됐다고 선전한다.
대전포위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을 북한은 김일성의 천재적인 군사전략과 북한군의 용맹함 때문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당시 전선사령관이던 김책이 대전포위작전의 묘술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김일성이 진격속도가 빨랐던 논산방면의 북한군 연대가 방향을 대전으로 돌려 퇴로를 차단하게 했다고 한다.
또 전차를 대전 시내에 들여보내 후방을 교란한 것이 미군의 허를 찌른 전술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쟁기념관에는 대전포위전투를 형상한 실물축소도가 배치돼 있다. 이처럼 대전포위전투는 북한군이 6.25전쟁 초기에 거둔 미군을 포위 섬멸한 대표전투로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