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동동주의 향기

by 비움과 채움

어제 산행을 마친 뒤, 뒤풀이 자리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오래된 주막의 정취를 간직한 막걸리 집이었다.

벽 한쪽에 큼지막하게 쓰인 글씨, 수제 동동주.

그 글씨만으로도 주문은 이미 마음속에서 끝나 있었다.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낸 상차림이 동동주와 함께 놓인다.

투박한 도자기 잔에 부어진 동동주는 허연 빛깔로 잔잔히 일렁였고, 우리는 건배를 나누었다.

첫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누룩의 깊은 맛이 옛 농주의 기억을 불러왔다.


어릴 적 아버지는 애주가셨다.

막걸리를 늘 곁에 두셨고, 어머니는 술독에 막걸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수 담가내셨다.

아버지는 술독에 코를 가까이 대고 부글부글 익어가는 냄새만으로도 술의 거를 때를 알아내곤 하셨다.

막걸리를 마시며 수염에 흘러내린 술을 손으로 훔치던 아버지의 흡족한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 어머니가 술찌개미에 당원을 섞어 내놓으시면, 어린 나는 그것을 퍼먹고는 금세 취기가 올라 비틀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오늘 마신 동동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몇 순배 잔이 오가자, 주인아주머니는 동동주를 담그는 법을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그 말속에서 나는 어머니의 손길을, 그리고 아버지의 흥겨운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한 모금의 술이 단숨에 세월을 거슬러 나를 옛 주막으로 데려갔다.

술을 마시며 흡족해하시던 아버지, 그 술을 빚으며 가정을 지키던 어머니. 잔을 기울일수록 그 모습들이 겹쳐져 눈가가 숙연해졌다.


동동주 한 잔이 단순한 취기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 담긴 정성과 기억, 그리고 가족의 숨결을 전해주는 매개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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