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던 날,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한 어르신이 다가와 내 발을 힐끗 보시더니, 자신의 신발을 대어보며 물으셨다.
“몇 문 신으시오?”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어르신은 내 신발을 보며 웃으시더니 말했다.
“이야, 신발이 항공모함 같아서요.”
내가 다시 여쭈었다.
“그럼 어르신은 몇 문 신으세요?”
그분은 발이 작다 하시며, “난 9문도 크지” 하고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지냈던 옛 기억이 문득 되살아났다.
어릴 적에는 신발 크기를 이야기할 때 지금처럼 ‘몇 밀리’가 아니라 ‘몇 문, 몇 푼’이라고 불렀다.
1문이 약 2.4cm에 해당했으니, 내 발 사이즈 290mm는 옛날로 치면 12문 5인 셈이다.
60~70년대만 해도 신발가게에서 “십문칠 주세요” 하면 누구나 무난히 맞는 치수였다.
그래서 그 당시엔 “십문칠은 표준”이라는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내 발은 남들보다 커서 늘 신발 구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결국 미군 부대가 있던 이태원이나 의정부까지 원정을 가야 했고, 모양은 둘째치고 발에만 맞으면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신발을 신고 왔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밀리미터’가 당연한 표준이 되어 버려 ‘문’이라는 단어조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십문칠’이라는 말속에는, 그 시절의 생활 방식과 정겨운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오늘, 신호등 앞에서 내 발을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12문 5의 내 신발. 남들 눈에는 커다란 항공모함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겐 이 왕발이 내 삶을 묵묵히 지탱해 준 고마운 분신이다.
잊혀 가던 단위와 함께, 오래 전의 추억이 신발을 따라 되살아난다.
오늘따라 내 발은 유난히 커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 크기마저 정겹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