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 갑작스러운 아이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휘젓는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바라보다 짧은 눈빛 교환을 한다.
그리고 아빠가 꺼낸 건, 결국 휴대폰이었다.
그 순간, 마법처럼 울음은 멈췄다.
휴대폰 화면이 켜지자 아이의 얼굴엔 즉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 작은 손가락은 놀라울 만큼 능숙하게 화면을 눌렀다.
무슨 게임인지, 어떤 영상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의 눈빛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화면에 고정되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안과의사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요즘 아이들 시력이 너무 빨리 나빠지고 있어.
대부분 원인은 스마트폰이야.”
갓난아이부터 초등학생까지,
휴대폰은 이제 ‘놀이’가 아니라 ‘돌봄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부모는 아이가 조용하면 안심하고,
아이는 조용히 있는 대가로 화면을 얻는다.
그 사이에서 대화는 줄어들고,
눈빛의 교감은 점점 사라진다.
사실 어른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뉴스 대신 짧은 영상으로 세상을 알고,
대화보다 메시지를, 산책보다 스크롤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 습관을 아무런 방어력도 없는 아이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손에 쥐어진 휴대폰은
잠시의 편안함을 주지만,
그 대가는 너무 크다.
빛에 갇힌 시선은 세상을 잃고,
영상에 길든 마음은 상상의 날개를 잃는다.
언젠가, 그 아이가 자라
창밖의 햇살보다
화면 속 빛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다면—
그건 부모 세대의 책임일 것이다.
아이의 울음을 달래는 건
화면이 아니라 품이어야 한다.
휴대폰이 아니라 목소리여야 한다.
잠시 귀찮고 시끄럽더라도
그 순간의 소란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으로 자라나는 온기의 소리 아닐까.
오늘 전철 안에서 본 그 장면은
단지 한 가족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거울 같았다.
아이의 손에 쥐어진 건
화면이 아니라 세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