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겨울의 문턱에서

by 비움과 채움

입동(立冬), 이름 그대로 겨울이 들어선다는 뜻이다.

아침 공기는 한층 차가워지고,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나무들은 이미 낙엽을 다 떨구고, 빈 가지 끝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는다.

사람들은 그제야 느낀다.

아, 이제 진짜 겨울이 오는구나.


옛사람들은 입동을 맞으며 삶의 리듬을 바꾸었다.

집집마다 김장 준비가 시작되고, 우물가에서는 무와 배추를 씻는 부녀자들의 손이 분주했다.

시린 물속에서도 웃음이 흘렀고, 그 웃음은 따뜻한 김칫독 속에 함께 묻혔다.

새하얀 김장김치의 숨이 차오를 즈음, 겨울의 냄새가 마당 가득 번졌다.


입동은 단지 날씨의 변화를 뜻하는 절기가 아니었다.

한 해의 수고를 마무리하고, 고마움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 조상에게 고사 지내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떡을 나누어주며, 이웃과 함께 먹었다.

그것은 ‘겨울을 함께 견디자’는 마음의 약속이자, 공동체의 온기를 확인하는 의례였다.


입동날의 날씨로 겨울의 추위를 점쳤던 옛 풍속도 그리운 정취다.

경남에서는 갈까마귀가 날아오면 겨울이 깊어질 징조라 하였고, 밀양에서는 그 새의 흰 배를 보며 목화농사를 점쳤다.

제주에서는 입동날 따뜻하지 않으면 바람이 심할 거라 했다.

사람들은 하늘과 바람, 새와 짐승의 움직임에서 계절의 기미를 읽었다.

자연은 곧 달력이고, 사람의 삶은 그 달력의 일부였다.


이제 도시에서는 김장독 대신 냉장고가, 우물 대신 수도꼭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입동의 의미는 여전히 남아 있다.

춥고 긴 겨울을 맞기 전, 마음의 장작을 쌓는 시간.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고, 이웃의 안부가 먼저 떠오르는 때.


입동은 그렇게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마음은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되었나요?”


겨울은 차가운 계절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는 문턱, 입동은 언제나 따뜻하다.

그 안에는 지난 계절의 감사와, 다가올 겨울을 함께 견디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은행나무, 아름다움과 냄새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