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길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가 있다.
노랗게 물든 잎으로 거리를 물들이는 은행나무다. 햇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는 그 잎들은 누구의 시선에도 찬사를 자아내지만, 그 아래로 떨어진 열매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출근길, 바닥에 깔린 은행알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짓이겨지고, 진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긴다. 마치 지뢰밭을 걷는 듯 긴장된 표정으로 말이다.
냄새로 인한 불편, 그리고 관리의 현실
지자체가 굴착기에 진동 수확기를 달고 ‘조기 수거’에 나선다는 뉴스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악취 민원이 빗발치고, 주민들이 은행나무를 “가을의 불청객”으로 여길 만큼 냄새는 생활 속 불편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은행나무가 스스로 원해서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 즉 진화의 결과다.
열매의 껍질에 포함된 불쾌한 냄새는 동물로부터 씨앗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인 셈이다.
살아있는 화석의 품격
은행나무는 약 2억 5천만 년 전부터 존재한 “살아있는 화석”으로, 수많은 멸종과 변화를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꽃가루를 날리는 수나무와 열매를 맺는 암나무가 따로 존재하는 암수딴그루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며, 인류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지구의 시간을 견뎌왔다.
그 긴 역사 속에서도 형태를 거의 바꾸지 않았다는 점에서, 은행나무는 진화를 거부한 완성형 생명체’ 또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랑과 혐오, 그 모순의 공존
사람들은 노란 단풍의 황홀한 풍경 앞에서는 감탄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그 열매의 냄새에는 코를 막는다. 아름다움과 불쾌함이 한 나무 안에서 공존하는 셈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은행나무를 베어버리자"라고 주장하지만, 또 어떤 이는 "그럼 가을이 사라진다"라고 말한다.
이는 곧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가 좋아하는 부분만 선택하고, 불편한 부분은 없애려 드는 것이다.
노란 잎 하나의 위로
오늘 나는 출근길에 떨어진 은행잎 하나를 주워 책갈피에 끼워두었다.
그 노란빛이 주는 온기는, 냄새 따위로 잊힐 수 없는 은행나무의 선물이었다.
가을의 불편함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성숙한 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