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바람 사이로 스며들던 낮은 외침.
“군고구마 사세요”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얼어 있던 마음 한구석이
문득 따뜻하게 녹아내리곤 했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퇴근 후 군고구마 장사를 하며 불우이웃 돕기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준비를 마쳤다며 밝게 전화를 해왔지만,
오늘 걸려온 그의 전화 속 목소리는 무겁고 힘이 빠져있었다.
“고구마값이 너무 올라서 올해는 포기했어.”
말끝이 허공에 맺히는 순간,
그보다 내가 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군고구마 장사는 단순한 노점상이 아니었다.
겨울을 견디던 서민들의 삶을 데워주던 작은 난로였고,
지친 하루 끝에 겨우 숨 돌리게 해 주던 따뜻한 쉼표였다.
드럼통을 실은 리어카에
장작불로 고구마를 굽던 그 시절의 풍경.
검댕 묻은 손등, 통 속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막 꺼낸 고구마를 들고 뛰어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군고구마 한 봉지 속에는
그 시절의 정, 온기, 사람 냄새가 오롯이 배어 있었다.
시대가 흐르며 장비는 LPG 통으로 바뀌고,
둥글던 드럼통은 반듯한 스테인리스통으로 변했고, 고구마 장수의 복장도 정갈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변함없는 진화 속에서 사라진 것은 단 하나,
겨울밤 골목을 따뜻하게 채우던 사람의 온기였다.
원가가 오르고, 계산기를 두드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 세상.
손해를 감수하고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장사꾼의 마음도, 오래된 풍경도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퇴근길에는
군고구마의 달큼한 냄새가 더 이상 풍기지 않는다.
대신 차갑고 건조한 바람만
텅 빈 골목을 스쳐 지나간다.
군고구마를 사들고 들어와
포근포근한 군고구마를 반으로 갈라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조각을 아이들 손에 쥐여주면, 아이들이 더없이 행복해하던
그 따뜻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군고구마는 단지 겨울 간식이 아니었다.
어른의 마음을 전하고,
아이의 겨울을 행복으로 채우던
‘정’이라는 이름의 겨울 풍경이었다.
세상은 변하고, 물가는 오르고,
거리의 풍경은 하나둘씩 사라져 가지만,
이상하게도 군고구마의 기억만은
여전히 가슴속에서 또렷하게 달아오른다.
아마도 우리는
군고구마의 달콤함보다
그 속에 스며 있던 삶의 온기와 추억,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겨울의 정취를
더 깊이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