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보아온 후배라
그의 인생사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훤하다.
직업상 알게 된 관계였지만,
선후배를 넘어 형제 같은 우애로 이어져 온 인연이다.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망설임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침대에 환복을 입고
누워있는 녀석의 모습은
내가 생각한 모습을 넘어서 있었다.
병명은 간경화였다.
간이 굳어 혈액의 흐름이 막히고,
압력이 높아져 복강에 물이 차는 병.
간병인의 설명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복어처럼 부풀어 오른 그의 배였다.
두 번이나 복수를 뺐다는 말에
온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후배는 고급 유흥주점 인테리어 공사를 해왔다.
그 세계의 특성상,
술이 비즈니스 관계의 조건이었고
술이 일을 만들었다.
하여 일은 줄은 서지만
공사대금은 미뤄졌다.
공사대금 대신
술로 결재를 대신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 고리를 끊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녀석이 술을 정말로 좋아했기 때문.
안쓰러운 마음에 위로의 말을 건네자
후배는 뜻밖에도 웃으며 말했다.
“형님, 저만큼 좋아하는 거 하며 산 사람들 흔치 않을 겁니다. 허구한 날 좋은 술 마시고,
권위도 없음에도 극진한 대접도 받아보고,
숱한 시간들 신나고 즐겁게 놀았으니
저는 원도 한도 없습니다.”
그 말이 허세인지 체념인지 가늠하려는 순간,
그의 눈빛은 놀랄 만큼 맑았다.
“형님은 산에 오를 때 가장 행복하시다 하셨죠?
전 술 마실 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내일 죽어도,
좋아하는 거 실컷 하고 살았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
이토록 담담한 확신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순간,
누가 환자인지
누가 위로를 하러 온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누가 삶을 다 산 사람인지도.
병실을 나서기 전,
녀석은 또렷하게 이렇게 말했다.
“형님, 제가 죽거든
조문은 오실 거죠?
그때 제가 좋아하는 위스키 한 잔만 꼭
따라주세요.
독한 걸로요.”
그러겠다고 답하며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언젠가 이 온기가 식을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고통 없이 오기를
마음속으로 빌며
병원을 나섰다.
술 예찬에 남다르던 녀석과
술잔을 부딪히던 옛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