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아들이 말했다.
아빠 생일선물을 해드리고 싶다며
필요한 게 있으면 한번 생각해 보란다.
괜찮다고 했지만
기어이 마음을 보태고 싶다는 눈치였다.
막상 생각해 보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신발, 재킷, 목도리,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순간순간 스쳤지만
내게는 부족함이 없어
긴히 필요한 물건이 생각나지 않았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때 문득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날면도기로 면도를 하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인중에 맺히던 작은 피 한 방울.
아무 일 아닌 듯했지만
거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던 기억이 났다.
그 순간, 전기면도기가 떠올랐다.
예전에 써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날면도기만큼의 만족은 아니어서
결국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던 기억.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기면도기를 선택했다.
선물로 받은 전기면도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기술은 그 사이 많이 진보해 있었다.
피부에 자극은 거의 없고
절삭력은 놀라울 만큼 깔끔했다.
면도기가 지나간 자리를 손으로 더듬어 보니
맨살처럼 부드러웠다.
비누칠을 하고
조심스럽게 거울을 들여다보며
상처 날까 신경 쓰던 시간이
이제는 필요 없겠구나 싶었다.
편리해졌다는 말보다
안전해졌다는 느낌이 먼저 와닿았다.
세상은 이렇게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사람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들의 마음이 있었다.
아빠를 다치지 않게 하고 싶었던
그 조심스러운 배려가
면도기 하나에 담겨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톡을 보냈다.
“아들 덕에 아빠 수염, 앞으로 꼼짝 마라.”다.
짧은 메시지였지만
그 안에는 고마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면도기 하나를 통해
나는 편리함을 얻었고
그보다 더 큰 선물로
아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받았다.
어쩌면 생일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이렇게 나를 걱정해 주는
그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