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설을 잘 쇠었냐고 안부차 준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아이고, 죽겠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말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이 친구는 예전부터 말끝마다 "죽겠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붙이곤 했다.
한때는 그 말이 몹시 거슬렸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말이었고, 마치 삶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느낌도 들어 언쟁을 한 적도 있었다.
"속으로 힘들어도 그런 말은 뱉지 말라"라고, 다소 거칠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일 이후 한동안은 괜히 마음이 불편해져 거리를 둔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신문에서 한 칼럼을 읽게 되었다.
사람들이 "죽고 싶다"거나 "죽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데에는 단순한 언어 습관 이상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심리적인 고갈이나 스트레스, 혹은 도움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신호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그저 지나치지 말고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문득 친구의 말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정말 힘든 건 아닐까, 그동안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거나 혹은 너무 단정 지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엔 통화를 할 때는 말을 끊거나 면박 주지 않고 그냥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의 "죽겠다"는 말은 정말로 절망이나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배고파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좋아 죽겠다, 보고 싶어 죽겠다…
그 말은 슬픔의 표현이라기보다 감탄사에 가까웠고, 어느새 입에 붙어버린 생활의 말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물론 말이라는 것은 힘이 있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저 습관처럼 흘러나오는 소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그 친구의 "죽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처럼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는다.
그저 "그래, 많이 힘든가 보네" "녀석이 죠크하네"하고 웃으며 받아주기도 하고,
"그래도 살아야지" 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말끝에 붙는 그 표현이 이제는 친구의 말투처럼 느껴질 뿐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저마다의 말버릇이 있다.
어떤 이는 "정말"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어떤 이는 "그러니까"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 친구에게는 "죽겠다"라는 말이 그저 그런 버릇 중 하나였을 뿐이다.
설밑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내려놓으며 문득 웃음이 났다.
말끝마다 "죽겠다"를 붙이던 친구는 여전히 잘 먹고, 잘 웃고, 또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정말로 죽을 만큼 힘든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일상의 말버릇일 뿐이라는 사실이.
나도 한 번 중얼거려 본다.
"좋아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