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열렸습니다.

by 비움과 채움

라일락과 벚꽃이 팡파르를 울리듯 봄의 문을 활짝 엽니다.

겨우내 굳어 있던 가지마다 연둣빛 기운이 스며들고, 부풀어 오른 꽃망울은 계절이 다시 숨을 고르며 시작된다는 신호처럼 보입니다.

겨울의 잔기운을 밀어내고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력의 절정, 4월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걸음으로 우리 곁에 다가섰습니다.


영국이 시인 T. S. 엘리엇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습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며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겨우내 덮어 두었던 마음이 녹아 흐르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과 아직 이루지 못한 욕망이 동시에 고개를 듭니다.

그래서 4월은 따뜻하면서도 낯설고, 설레면서도 묘하게 가슴을 흔드는 역설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그 역설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발견합니다.

개나리의 노란빛이 골목을 밝히고, 목련의 하얀 숨결이 하늘을 향해 번지며, 벚꽃은 바람에 흩날리며 봄의 절정을 알립니다.

이어 라일락의 은은한 향기와 튤립의 선명한 색이 계절의 바통을 이어받아 세상은 점점 더 환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마치 겨울이 오래 머물렀던 자리에 봄이 차분히 앉아 세상을 다시 정리하는 듯합니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만큼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따뜻한 햇살이 등을 토닥이고, 부드러운 바람이 어깨 위에 내려앉습니다.

길 위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연둣빛으로 번지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일상 속 작은 변화들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풍경들이 4월이 되면 유난히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4월이라는 이름이 ‘열린다’는 뜻의 라틴어 aperio에서 유래했다는 말처럼, 이 달은 닫혀 있던 마음을 여는 시간입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미뤄 두었던 다짐을 다시 꺼내고, 작지만 분명한 희망 하나를 심는 계절입니다.

아직 완전히 따뜻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이 중간의 온도 속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습니다.


아픈 기억과 새로운 기대가 함께 싹트는 달.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도 앞으로의 길을 밝히는 달. 4월은 그렇게 생동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우리 곁에 섭니다.


오늘, 4월의 첫날.

꽃이 피어나듯 마음에도 작은 시작 하나를 심어봅니다.

이 달이 지나갈 무렵, 그 작은 씨앗이 조용히 자라

우리의 하루를 더 따뜻하게 밝혀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4월의 문 앞에서 잠시 서서 깊게 숨을 들이켜 봅니다.

봄이,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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