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게
호룡곡산을 오르던 어느 여름날,
산길에서 낯선 생명체를 만났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바위 위, 흙길 위, 저 멀리 풀숲 가장자리까지
주먹만 한 붉은 게 들이
집게를 세우고 재빠르게 ‘게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바닷가에서라면 모를까,
이곳은 분명히 바다와는 먼 깊은 산속이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거리낌 없이 산길을 활보하고 있었다.
마치 사람을 구경이라도 하듯,
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기도 했다.
한 마리, 두 마리...
보다 보니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무리를 이루며 움직이는 게 들.
그 정체가 궁금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검색을 해보았다.
이름하여 ‘도둑게’.
그들은 바닷게처럼 보였지만,
사실 대부분의 삶을 산에서 보내는 녀석들이란다.
단, 산란기엔 바다로 내려가 알을 낳는다는 사실에
자연의 신비로움 앞에 고개가 숙여졌다.
도둑게.
이름만 들으면 어쩐지 장난기 많은 녀석들 같지만,
실은 대단한 여정의 주인공들이다.
육지에서 살다 바다로 가고,
또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이 긴 여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생명력.
산이 좋아 올라왔다 머물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 산은 그들의 본래 삶터였는지도 모른다.
그 작은 몸집으로
이토록 유연하게 환경을 넘나들 수 있다니,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부끄러워졌다.
오를 때도 녀석들이 내 발길을 멈추게 했고,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발목을 붙잡고는 놀이처럼 따라왔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나는 이 산에서 도둑게와 한참을 놀고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속엔 자연의 유연함, 생명의 지혜,
그리고 내가 잊고 살았던 여유가 담겨 있었다.
산에서 만난 뜻밖의 인연,
그날의 도둑게는 내 마음속 작은 쉼표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