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눈에 비친 광경
지난겨울
프랑스에서 온 기업 임원과 열흘 남짓을 서울에서 함께 보낸 적이 있다.
낮엔 사업 미팅, 저녁이면 시내 관광
일정은 알찼고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가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던 풍경들이다.
쇼핑몰에 들어서자 그가 깜짝 놀랐다.
"지금… 겨울 아니었나?"
실내는 초겨울 날씨였고, 종업원들 중 몇몇은 반팔 차림이었다.
"여긴 남반구인가요?"라는 농담 섞인 질문이 진심처럼 들렸다.
그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비즈니스 파트너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집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반팔이었다.
그는 물었다.
“한국은 기름을 100% 수입한다던데? 그런데 어떻게 겨울에 실내를 이렇게 덥게 유지하죠?”
그의 말에 당황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언제부터인가 추위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익숙해졌다는 표현은 틀렸다.
추위와 더위를 못 견디게 된 것이 맞겠다.
여름이 되면 은행이며 백화점, 지하철까지 모두 냉장고처럼 차갑다.
겨울엔 모든 실내가 여름처럼 따뜻하다 못해 후끈하다.
도리어 외투를 벗고 반팔로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은 겨울에도 맨발로 뛰놀고, 실내에서 땀을 뻘뻘 흘린다.
우리는 이제, 기후에 적응하기보다는
기후를 억지로 조절하려 한다.
그것이 잘 사는 증거일까?
아니면, 감각이 무뎌진 채 과소비에 중독된 결과일까?
프랑스 임원은 말했다.
“우리는 난방보다 스웨터를 선택합니다.”
그 말이 부끄럽게 다가왔다.
더운 날엔 부채 하나, 추운 날엔 두꺼운 외투 한 벌로 버티던
그 시절의 지혜와 절제는 어디로 갔을까?
공항에서 그와 작별하고 돌아오는 길,
나도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편안함을 택하고, 너무 빠르게 불편함을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라도 질문해 볼 때다.
‘이 따뜻함과 이 시원함은 누구의 몫을 빼앗아 만든 것일까?’
지구와 미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