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간 3류 극장, 그 어스름한 추억의 스크린

동시상영 삼류극장

by 비움과 채움

언젠가부터

우리는 커다란 쇼핑몰 속, 반짝이는 간판 아래에서 영화를 본다.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을 가진 상영관은

편안한 좌석과 또렷한 화질, 휘황한 조명과

팝콘 냄새 가득한 복도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그러나 가끔은,

이 모든 것이 너무 말끔해서 서운할 때가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3류 극장’—정확히는 동시상영관이라 불리던 그곳.

그 시절,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비로소 영화를 소유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한 번 개봉한 영화가 간판을 내리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즈음

동시상영관의 어두운 스크린 위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두 편씩, 때로는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 보여주던 그곳.

누구도 재관람을 막지 않았고,

잠시 졸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던

그 느슨한 공기와, 가끔은 스산했던 의자.


개봉관은 꿈이었다.

단성사, 피카디리, 국제극장, 허리우드, 서울극장…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건물은

가난한 주머니에겐 그림 속 풍경이었다.

우리는 간판을 보며 줄거리와 장면을 상상했고,

때때로 걸린 스틸컷 몇 장에 가슴 설레곤 했다.


하지만 동시상영관은

우리의 극장이었다.

비록 시설은 낡고 스크린은 바랬지만

거기엔 우리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무명가수의 리사이틀이 열리고,

때론 호기심을 채우던 금기된 장면들이 스쳐갔으며,

어디선가 웃음소리와 쿨럭임이 섞여 흐르던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문화’를 소비하고 있었다.


3류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그곳은 분명 서민의 예술 공간이었고

삶의 틈을 메우던 쉼터였다.


이제는 멀티플렉스가 도심을 지배하고,

지하철과 연결된 그 깔끔한 공간 안에서

우리는 예매를 하고 지정 좌석에 앉는다.

영화가 끝나면 정해진 동선에 따라 흩어지고,

남는 것은 카드 내역과,

짧은 감상 한 줄일 뿐이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다.

그 어두운 복도, 삐걱이던 좌석,

허술한 음향 사이로 들리던

우리의 웃음, 우리의 감정, 우리의 젊음.


3류 극장은 이제 없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아직도 퇴색한 포스터가 붙은 그 극장의 간판이

희미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름과 가을이 만나는 길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