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서

by 비움과 채움

계절은 언제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스르르 물러나듯 다음 계절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여름도 마찬가지다.

그 강렬했던 태양, 매미의 울음소리, 숨이 턱 막히던 더위조차

어느 날 문득, 조금씩 사라진다.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지만

이제는 팔 끝으로 닿는 감촉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한낮의 뜨거움은 사그라지고,

바람은 슬그머니 서늘함을 연습한다.


귀를 막을 듯 요란했던 매미 소리도

이제는 간헐적으로 들린다.

지친 듯, 곧 침묵하겠다는 듯

여름의 마지막 노래처럼 울려 퍼진다.


텁텁한 입안에 시원함을 주던 수박은

이제 그리움을 남긴 채 식탁에서 사라지고,

선풍기의 바람도

이제는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저녁노을은 점점 빨리 찾아오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난다.

논두렁이나 길가에는 들국화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벌써 가을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고한다.


여름은 이별을 말하지 않는다.

화려하게 떠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물러선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햇살 한 조각,

바람 한 줄기,

기억 한 토막을

조심스럽게 되새긴다.


그렇게

또 한 계절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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