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유익한 측면에 대해
절대적으로 동감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도 때론
뭔가 기념하고 싶은 기쁨에 겨운 날,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비감함에 빠진 그런 날
알코올 샤워가 간절해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술이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싫어졌다
애초에 술을 즐길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게 거부반응이 생긴 건
다분히 폭력적인 군대 회식문화에
학을 떼서도 아니고
체질적으로 알코올 알러지가 있어서도 아니고
나의 태양과도 같았던 아빠를
비겁한 초로의 남자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이후부터인 듯 하다
아빠가 느끼시는 외로움과 허전함만큼이나
술을 벗삼는 횟수가 점점 늘어가고
알코올의 힘을 빌려야만
속내를 털어놓으시는 걸 보고
난 많이도 야속해했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내가 그렇게도 미워한 건
'술'도
술을 마시는 '아빠'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