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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Apr 30. 2016

해독이 필요해



 

초등학교 시절-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뛰어다니는게 일상이라

운동 신경 좋다는 말을 왕왕 듣곤 했는데


중학생이 되고 난 이후

내 생활 전체가 강제 개편되면서

책상과 의자를 벗삼아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운동과 멀어진만큼

체력도 떨어지고

운동을 싫어하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만들어놓은

중, 고등학교 시절의 생활기록부 속

숫자와 기록들을

체력장 하나로 오점을 남기고 싶진 않았지만

 

나도 다른 여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근력과 폐활량이 턱없이 부족해

멀리 던지기도 못하고

푸시업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고

무엇보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를 못했다


선생님께서 호루라기를 불어 시작 신호를 주시면

다들 1~2초 이내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내리기 바빴다

나 또한 마찬가지-


그렇게 연습을 해도 안되던 일이

막상 당일에 죽을 힘을 다해 버티니까

혼자서 40초를 넘기는 기염을 토하면서

만점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터질 듯이 상기된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버티는 내 모습을 보던

무리 중의 한 친구는 무심코 한마디를 뱉었고,

세상 둘도 없이 최고로 절박했던 나의 귀에

그대로 들어와 꽂혀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살아있다


난생 처음 들어본 말이자 강렬했던 한 마디-


진짜 독하다 독해-!

한번도 스스로 독하다 생각해본 적 없고

다른 누구를 경쟁 상대로 삼은 적 없이

나 자신이 세워놓은 목표만을 놓고 질주하던  

나에게는 생경한 말일 수 밖에 없었다


'이걸 가지고도

독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가?'


'독한게 이런 거라면

나도 할 수 있는 거겠구나'


그러지 말 걸 그랬다

그 말로 말미암아

성인이 된 나는 스스로 독하다고 착각했고

내가 싫어하는 남들의 경쟁문화에서도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난 오로지 혼자만의 싸움으로

승리하던 사람이었는데

애초에 내가 경쟁할 생각을 가지지 않는 남들에게

함께 부대끼는 생활을 허락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들이 기대하는 '독함'을 보여주지 못하니

실망과 비난의 화살이 돌아왔다


독하지 못할 거면

독해질 수 있다는 착각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릴 때 들었던 말 한마디로

나를 충동질 했던게 후회스럽다


어설프게나마 아직 독기가 남아있다면

모조리 해독해버릴 생각이다


바보같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본연의 내 모습을 찾는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값진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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