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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11. 2021

부드러운 삶을 위하여

직관에 따라 단순하게 살기


"직관에 따라 단순하게 살수록 삶은 부드럽게 흐르더라"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05/08/42A4KZSBNJATXGI5WSVNEQYYRA/ )


문장 하나만 놓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게 없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말이 참 좋았다. 내가 듣고 싶어했던 말을 누군가가 잘 조립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서 나에게 던져준 느낌이랄까. 나는 온라인에 떠도는 이런 저런 글들을 보다가 인상적인 문구를 발견하면 일단 캡쳐부터 해놓는다. 그리고 한참 지나 핸드폰 사진첩을 정리할 때 '이런 것도 있었네' 하고 이내 시큰둥해져 휴지통으로 던져버린다. 그런데 이 문장은 나에게 임팩트가 강했는지 이렇게 브런치 글로 살아남았다.


순간의 의미가 담겨 뾰족하게 느껴지는 '직관'을 뺀 나머지 단어들, 단순하게, 삶, 부드럽게, 흐르다 모두 자연스럽고 둥글둥글한 느낌을 준다. 현대시 수업시간에 시인 김수영의 <풀>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풀이 진짜 눕는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글이 이미지로 일렁이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단어들이 둥글었으면 오히려 별다른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느낌의 '직관'이 맨 앞에서 한 번 꽂아주었기 때문에 뒤따르는 단어들이 더 제 몫을 하는 것 같았다.




직관을 따르는 것은 나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믿는다 어쩐다 하니 너무 자기계발서 같고 거룩하게 들리지만 그런 느낌보다는 뿌리가 단단한 자신감이라고 해야할까. 가끔 주변에서 보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의 나는 그런 사람들의 자신감을 '근자감'이라고 말하며 폄하했다. 사실 자신감에 꼭 근거나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부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노력과 의지로 꾸역꾸역 부족함을 메워온 내가 아무리 애써도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타고나지 않은 사람도 아예 방법이 없지는 않다. 몸으로 때워 빅데이터를 많이 쌓는다면 어느 정도 가까이에는 갈 수 있다. 뻘짓을 엄청 많이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게 바로 나예요...근거가 없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구르고 굴러 경험적 근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맞닥뜨리는 상황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 대처하는 나에 대한 패턴은 옷소매로 눈물 쓱 닦고 나서 또 열심히 읽어내면 되니까. 그러다보면 나는 어느덧 나에게 닥쳐오는 쎄함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쎄믈리에가 되어있을 것이다.


경험적 근거를 많이 쌓으려면 나의 실패에 관대해져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믿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실패에 너그러워진단 말인가.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는 것은 수사적인 표현이지만 나는 너무 쪽팔리거나 도망가고 싶을 때 정말 눈을 질끈 감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잘 잊어야 한다. 실패가 자꾸 기억나면 새로운 것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나처럼 맨날 홧김에 술 먹고 잊으면 안된다. 비밀번호 찾기를 하며 맨날 욕하는, 하지만 또 까먹는 증권앱 패스워드처럼 수시로 잊어야 한다.


이게 다 열심히 해서 그렇다.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고민도 너무 열심히 했다. 그런데 늘 그 결과물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고민 많이 한다고 결과가 반드시 좋다면 누가 고민을 안하겠는가. 그리고 컨셉이 본캐를 집어삼킨 한사랑산악회 멤버들마냥 내 딴에는 머리 터지게 했던 고민이 성취에 다가가기 위한 에너지를 집어삼켜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한사랑산악회는 웃기기라도 하지, 나의 고민은 그저 뜨겁기만 했다. 어후, 부담스러워. 예전의 나는 이렇게 나도 부담스럽고 내 앞에 주어진 삶도 부담스럽고 좀처럼 무엇 하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없었다.




요즘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이 부드럽게 흘러가길 바란다. 되도록이면 되는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나를 가만 두지 못해 안달났던 시기를 이제 그만 다 보내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서 대충 살고 싶다! 나를 중심에 놓아주지 않는 세상이 더이상 야속하지도 않고,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서럽지도 않다. 모르는 게 많아 두렵고도 짜릿했던 때에 비해 경험적 근거가 많아진 덕분에 인생이 조금 시큰둥해졌지만 팔짱끼고 '니가 어쩌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오히려 주어진 하루하루들이  눈부시게 느껴진다. 삶이라는 묶음이 별거 없다고 느껴지고 나니 오히려  삶을 구성하는 하루하루들이 신기하고 소중하다. 누가 그랬는데. 좋은 하루가 모여서 좋은 삶을 만든다고.  문장을  때는 몰랐는데 수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까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나보다. 나는 요즘 보내는 하루들이  맘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려고 애쓰고 나에게 좋은 것을 많이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죽을 때도 속시원하게 죽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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