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나에게 은전 한 닢이었던 것일까. 삼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간사한 닝겐의 마음. 야심차게 시작하며 소문내놓고 글이 올라오지 않아 여러모로 주변의 핍박을 받고 있다. 내가 그렇지. 뭐. 껄껄껄. 그렇다고 아예 시도를 안한 것은 아니었다. 뭐라도 쓰려고 각 잡고 메모도 해보고 했는데 망할 놈의 유튜브 프리미엄...요즘 중고딩들은 학업에 열중할 수가 있는 걸까? 이렇게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넘쳐나는데.
아무튼 뭐라도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일단 몇 가지 깔작거려본다.
1. 놓지마 정신줄
불과 어제의 일이다. 출근길 빗길에 미끄러져 1차 슬라이딩을 하고 에스컬레이터에서 2차로 정신줄을 놓았다. 허리에 에스컬레이터 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우당탕 넘어진 것 같은데 어떻게 올라왔는지 기억이 없다. 덕분에 굳이 볼 일이 없었던 나의 꼬리뼈 엑스레이를 보게 되었고 금이 간 것으로 추정된다. 술 먹고도 넘어지고 그냥도 넘어지고 원체 자주 넘어지는 편이라 그럴 수 있지 할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정말 블랙아웃처럼 기억을 잃어서 조금 무서웠다.
엄마는 니가 요즘 고기를 안먹어서 그렇다고 된장국에 밥 말아먹으면 다 낫는다는 말인지 방구인지..아무튼 그렇게 말했고 아빠는 너는 열 달 다 채워서 나왔는데도 왜 그 모양이냐는 덕담을, 동생은 눈빛만으로 충분히 느껴지는 비웃음을 선사했다. 꼬리뼈 엑스레이를 보며 이건 인간의 몸에 왜 있는 걸까 엄청 궁금했지만, 뻘생각은 그만 하고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 속에서 생겨나는 병도 병이지만 낙상도 진짜 대박 무서운 일이다. 비오는 날은 반스를 신지 말자.
2. 최고의 바이럴 마케팅
한 건의 지면 촬영과 한 건의 영상 촬영이 있었다. 두 건 다 방송가에서 20년 넘는 경력의, 오랜 구력이 있는 분들을 모델, 출연자로 진행했던 일들인데 이번 일들을 해보고 왜 이분들이 일을 오래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기 일을 잘 하는 건 기본이고 주변 스탭들을 잘 챙기는 합리적인 사람들. 일을 하면서 모델이나 출연자에게 그렇게 엄청 시달린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업계 친구들에게 이분들 모델로 쓰라고 바이럴을 하고 있더라.
그리고 재미있었던 건, 현장에 오셨던 모델 에이전시 실장님도 다른 촬영을 같이 했던 모델분이 너무 나이스하고 좋았다고 다른 캠페인 때 꼭 쓰시라고 바이럴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올리브영에서 산 마스크팩도 좋으면 친구들 단톡방에 알려주는 마당에 자기 일 제대로 잘해주는 좋은 사람을 어찌 알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 역량으로 밀어부칠 수 있는 건 확실히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결국 주변에서 나를 찾아줘야 일을 오래 할 수 있지. 큰 배움의 시간이었다.
3. 6월 스포
아마도 6월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될 듯하다. 산더미 같은 걱정으로 나 스스로를 화르르 태우던 때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그래도 나름 고민의 시간이 있었는데 일단은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 선택이 옳을까 뭐 이런 고민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 흡족한가를 생각해봤는데. 아주 흡족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선택을 했다.
'아니면 말고'하는 마음을 먹어보려고 애쓰고는 있는데 사실 이제 그럴 나이도 짬바도 아니고 나를 너무 해치지 않는 선에서 끝까지 책임져보고 아니면 또 뭐 셔터 내리고 다른 문 열어야지. 나의 부족함은 내가 울면서 메울 일이고, 부디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도움 좀 받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똘똘한 주니어들이 이 늙은 언니를 좀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알려줬으면...!
4. 요즘 좋은 것
- 볼드타입: 넷플릭스에서 요즘 보는 미드. 뉴욕. 예쁜 친구들. 잡지사. 패션. 그 나이에 할 법한 고민들.
- 일을 잘한다는 것: 유튜브의 유혹을 이기고 최근에 겨우 한 권 읽은 책.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 애매한 개념들을 잘 정리해준 느낌.
- 와일드플라워: 볼피노 이후 파스타가 이렇게 맛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레스토랑
- 쁘띠통: 회사 근처 빵집. 과일이 올라간 타르트가 아주 맛있음. 가격도 저렴
- 낫띵리튼: 후배들이 알려준 브랜드인데 요즘 나의 잔고를 털어가는 주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