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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r 26. 2023

기쁨을 찾았다는 걸, 아는지

김광진 콘서트에 다녀와서

1분기 내내 노잼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작년 연말까지 누적된 피로를 잘 해소를 못하고 새해로 넘어온 탓인 건지 내가 제일 답답해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꽤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 나이에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게 한두 번이겠는가. 숱한 뻘짓을 통해 답까지는 모르지만 방향성은 알고 있다.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조금 더 능동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좋아했던 것 또는 하고 싶은 것들을 노잼시즌 중간중간 끼워 넣어보기도 한다. 이번 김광진 콘서트는 그런 맥락이었다.


나의 오빠들 라인업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꽤 좋아하는 뮤지션이었고 앨범이 나온 지 한참 지나 더 찾아들었던 가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업뮤지션이 아닌 직장과 가수생활을 병행 또는 왔다 갔다 하는 행보도 신선했다. 음악도 잘하긴 하지만 고정수입과 안전빵이 중요한 분이구나. 내 스타일이다. 그리고 내가 엄청 좋아하는 <아는지>가 들어있던 앨범부터는 이분이 보컬 트레이닝을 빡세게 받았나 싶을 정도로 고음을 정확한 음정으로 쭉쭉 뽑는 걸 보고 라이브가 궁금하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로 공연이 거의 없기도 했고 감흥이 1도 안 생기던 비욘드 라이브 따위로 잔뜩 마음이 옹졸해져 있던 상황이었는데 김광진 님의 인스타에 공연 소식을 보고 알람까지 맞춰 냅다 예매를 했다. 사실 노잼시기에는 이미 해본 경험, 아는 감정에 대해서는 더욱 흥미를 잃게 된다. 콘서트? 공연? 이제 오빠들 공연은 챗gpt처럼 세트리스트도 뽑을 수 있을 지경인데 뭐 얼마나 새로울까. 하지만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고민도 없이 티켓팅 완료.




영화나 공연을 혼자 보는 건 좋아하기도 하고 익숙한 일이라 새롭지 않은데 오늘 공연은 유독 더 혼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공연장에 불이 꺼지기 전, 혼자 앉아 머쓱한 시간은 잠시다. 공연이 시작되고 음악을 오롯이 느끼고 담는 건 어차피 혼자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공연의 감흥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는 것도 좋겠지만 오늘은 왜 그렇게 노래 하나, 소리 하나 다 가슴속 깊이 느끼고 담아두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다 잘 살아있어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노래도 노래지만 광진님 인스타그램에서 공연 세션들을 소개해주신 걸 보고 더 과감하게 지른 것도 있다. 이번 공연 세션들이 다 내가 좋아했던 앨범 자켓에서 자주 봤던 이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리와 연주 하나하나가 너무 다 살아있었다. 내가 '잘한다'는 말을 하는 게 듣는 입장에서 약간 '쟤 뭐래니'할 정도의 커리어를 가지신 분들이라 큰 의미는 없지만 진짜 왜 이렇게 잘하는겨. 분명히 지금까지 갔던 여러 공연들에서 한 번 이상 꼭 봤을 연주자들인데 오늘 너무 새삼스럽게 좋았다.


그리고 공연 자체를 너무 즐거워하시는 게 느껴져서 내 마음이 더 좋았다. 소극장이라 표정 하나하나 가까이 보여서 그런지 '음악과 한 몸이 된 신들린 연주' 이런 느낌보다는 '아, 저 사람들 즐거워하고 있구나'가 느껴져서 일시적으로 기쁨을 잃은 나의 마음을 사악- 녹여주었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공연이라서인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합을 맞춰서인지,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연주도 바이브도 무엇 하나 흠잡을 것이 없었다.


'어라, 나 이제 노잼시기 끝나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노래와 연주가 왜 이렇게 마음에 크게 와닿는지 생각을 해봤다. 숙련된 좋은 것을 너무 오랜만에 집중력 있게 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아무리 사람이 나이 들어도 어릴 때 듣던 노래를 계속 듣는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지만 나는 예전에 자주 듣던 노래들이 그냥 좀 답답해서 애써 피해 가는 중이었다. 예전 것들을 반복하다 보면 자꾸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를 잘 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즐겨 들을 음악을 잘 찾지 못하고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플레이리스트 속을 방황하다가 결국 익숙한 노래를 찾아 듣다가 또 지루해지고... 리스너로서의 나의 음악생활(?)은 진짜 한때 음악 좀 들었다고 하는 내 기준 진짜 엉망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한국의 100대 명반 진입을 넘보던, 공들여 만든 곡들을 너무 노련하고 잘하는 연주자들이 연주해 주니까 음악생활도 음악생활이거니와 위에서 말했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자, 이제 됐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해주는 것 같았다.




특히 박용준 님의 건반이 너무 충격적으로 좋았다. 남자들이 특유의 파워로 건반을 꾹꾹 눌러 힘 있게 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이 양반 원래 건반 잘 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 연주는 진짜 유려하다 못해 키보드 사운드만 따로 따서 듣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너무 유명한 곡인 <편지>는 가사도 가사고 보컬도 보컬이지만 난 도입부의 건반 연주가 80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그것을 생라이브로 들었으니, 완전 기절. 나머지 세션들도 '하, 저 짬바 진짜...'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오래간만에 나의 청각이 호사를 누렸다.


힘들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박하게 굴지 말고 잘해주려고 하는 마음은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는데 오늘 공연만큼이나 반등의 기운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되짚어보니 그동안 시도했던 것들은 조금 어정쩡했던 것 같다. 좋을 것 같은 것을 긴가민가 하면서 줬더니 직후에는 기분이 좋다가도 금방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내가 원래부터 좋아하던 확실한 행복을 고퀄로 주니까 거기서 오는 만족감이 꽤 많은 마음의 씽크홀들을 채워주었다. 뭐 하나 새로울 게 없는 이 상태가 지속될 것 같은 마음에 방황하던 나에게


"아, 세상에 내가 미처 못 느낀 또는 잊고 있던 아직 좋은 게 있구나!"하고 증명해 준 느낌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음악이, 좋은 연주가 있는데 그럼 또 열심히 더 살아봐야지. 돈 열심히 벌어서 또 공연 보러 가야지. 전개가 이상한 것 같지만 나는 이런 동력이 필요했다. 허무의 늪에 빠지지 않고 다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헛돈도 많이 썼지만 그래도 뭐든 시도해 보길 잘했다. 희열이 오빠가 <FM음악도시>에서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맨날 유니텔에 글 써서 올리던 그날처럼, 기어코 <라디오 천국> 첫방에서 나의 신청곡 <아는지>가 나왔던 그날처럼, 내 일상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사라지지 않게 하고 싶다.




<아는지>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곡인데 <진심>이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


그대를 지켜주는 건 그대 안에 있어요
강해져야만 해요 그것만이 언제나 내 바램이죠


결국 나를 구하는 건 나다. 기쁨도 슬픔도 다 내 안에 있어서 때로는 스스로 구하기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탈탈 털어 꺼내보아야 하기도 한다. 답을 구하려면 나를 남 대하듯 구석구석 살펴야 하나보다. 왜 그렇게 수많은 심리학책과 마음 어쩌고 하는 책들에서 결국 '나, 나, 나'하는지 점점 더 알 것 같기도 하다. 나의 기쁨, 나의 행복, 나의 평안 그것이 전부이고 그걸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밖에 없다. 두렵고 외로울 것 같으면서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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