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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y 17. 2023

왜 '황금가면'이었을까?

동률오빠, 살아있었군요

얼마 전 친구들과 농담처럼 "죽기 전에 동률오빠 라이브를 한 번 더 들어보고 죽을 수 있으려나?"하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논란의 중심이 되어 흔적을 감춰버린 안테나 사장오빠를 제외하고 그래도 다른 오빠들은 야금야금 싱글도 내고 SNS를 하든 페스티벌에 나오든 어딘가에서 생존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정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이 오빠는 자기 공연 말고는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황금가면'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제목의 싱글을 들고 나타났다.


예전 같았으면 버선발로 나가 신곡을 맞이했을 텐데 나도 이제는 도가니가 아픈 나머지 퇴근길에 나보다 먼저 들어본 사람들의 반응만 먼저 보게 되었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다. 실망이다, 발라드 듣고 싶었는데, 조우진, 뮤지컬 등등 언뜻 봐서는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키워드들이었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리여. 나도 에어팟을 주섬주섬 꺼냈다. 곡을 듣자마자 처음에는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이 양반이 오랜만에 나올라니까 뻔한 건 하기 싫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파격적인 도전을 할 사람도 아니고, 이것저것 너무 많이 고민하다가 삐끗했나?


그리고 춤추는 조우진이라. 이동욱, 공유, 현빈 등 미남 얼굴만 주구장창 나오는 뮤직비디오로 곡의 감동을 배가시킨(?) 사람이 갑자기 또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것 또한 새로운 시도를 하려다 삐끗한 건가? 개인적으로 조우진 배우는 딕션이 너무나 훌륭해서 오디오와 함께 더 많이 써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인데 그런 그에게 춤을 추게 하다니. 아무튼 그의 노래를 오랫동안 들어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아다리'가 안 맞는 결과물이라고 느낄만한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오히려 곡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그의 앨범 전체를 들어보면 마냥 슬픈 발라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처구니없이 쿵짝쿵짝 신나는 노래들도 은근히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쓸쓸하게 비워내는 것보다 악기든 화성이든 꽉 채워서 감정이 미어터지게 하는(보통 슬픔이지만) 그의 곡 구성을 좋아해서 그렇게 엄청 파격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나는 이상하게 이 노래 자체보다 이 노래를 만들고, 고르고, 내놓는 과정의 그에게 자꾸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그의 음반을 듣고, 공연을 보고 올 때마다 느꼈던 건 '정말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실망했던 적도 없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음악을 집요하게 다듬고 가꿔내는 이 양반이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내놓았을지 눈에 선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보려고 애쓴 것도 느껴졌다. 잘하던 것을 계속 잘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선택이었을 텐데 실망시키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안 하던 짓을, 희망을 좀 던져보겠다는 다짐 같은 한 걸음 말이다.


나도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게 무척 두렵다. 실망시킨다는 표현에는 '누구를'이라는 목적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사실 실망은 그 사람이 하는 거라 이건 나에게 달린 게 아닌데 나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아무리 내려놓는다고 노래를 불러도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것만큼 슬픈 게 또 없다. 나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니까 좀 더 잘됐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또 까다로워지고, 뭐 그런 거 아닌가. 그리고 이제 나는 더 이상 나 스스로를 두들겨 패지 않기 때문에 조금 힘들어도 내가 만들어내는 더 좋은 결과물을 보고 싶다.


결론적으로 나는 동률오빠의 신곡이 마음에 든다. 오늘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황금가면'을 듣고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자기가 이 곡을 발표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을 모두 예상하고 머리를 쥐어뜯었을 한국 가요계의 예민보스 김동률 옹께서 그럼에도 기꺼이 이 곡을 세상에 내놓기로 한 그 결심이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왠지 발라드도 몇 곡 써놓고 음원사이트 올리기 직전까지 뮤직팜 직원들을 들들 볶으며 고민했을 것 같다.


맨날 늦어서 미안하다, 다시 시작해 보자,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러는 거 답답하고 승질나서 여름에는 오빠노래 잘 안 들었는데 '정의는 무엇인 걸까. 승리는 무엇인 걸까'하는 안 어울리고 어처구니없는 가사와 함께 힘내라고 하는 저 이상한 직진, 어리숙한 격려가 웃겨서 여름 내내 잘 들어보려고 한다. 오빠, 이제 코로나 끝났으니까 공연도 하고 활동 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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