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일제문소 Jul 23. 2024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현상보다는 증상

최근 갑자기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일상이 흐트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이 좀 약해졌다는 시그널이다. 계획을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것에 비해 짜여진 오늘만 사는 타입이라 나의 일상에 가정법이 들어온다는 것은 현상보다는 증상이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자꾸 생각한다? 취약해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갑자기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괜히 조바심이 난다거나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회사일이 갑자기 잘 안될 것 같다거나 영원히 혼자 남아버리거나 나의 노후가 너무 불안정할 것 같다든가. 아주 안 일어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일어날 일도 아닌데 저런 생각들이 두더지게임처럼 뾱뾱 올라오는 때가 있다. 이게 취약해진 상태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저런 생각들에 신나게 두드려 맞고 우울함이라는 모래주머니를 기꺼이 내 손으로 채워 힘겹게 걷곤 했다.


지금은 그래도 저 상태가 시그널임을 알고 내가 갖고 있는 기쁨의 인덱스를 좀 뒤적거려 본다. 일을 좀 대충 하기도 하고,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한다. 주로 가장 빠른 방법인 맛있는 거 때려먹기로 풀긴 하지만 상태가 안 좋구나 하는 인지가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좀 생긴다. 분명 나아지기도 하니까. 나아지는 줄도 모르게 당장 내일 아침은 평소처럼 무념무상의 상태로 일어날 수도 있다. 배우들이 평소에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어떤 상황을 채집(?)해서 새로 맡게 된 캐릭터에 활용하는 것처럼 나도 나아지는 경험을 기억하고 모아두려고 애쓴다. 기분 좋아지는 상황들을 적어놓은 메모장도 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402번 버스를 타고 남산을 빙빙 돌아 광화문 씨네큐브에 가는 소박한 것부터 내가 갖고 싶은 서울숲 아크로 자가까지(…)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있고 대부분의 것들은 소박한 선에서 해결이 된다.


내 안의 불안이가 자기 혼자 원맨쇼하는 것까지는 차라리 괜찮다. 제일 골치 아픈 건 남의 인생이 자꾸 눈에 들어올 때다. 쟤는 이렇게 살고, 얘는 저렇게 사는데 나는 지금 괜찮나? 나 뭔가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그 선택이 잘못되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영화 <헤어질 결심> 마지막 장면의 파도처럼 세차게 밀려올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지금의 내가 흡족하지 않아서다. 지금 당장 울고불고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내 ‘열심’이 조금 공허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깊거나 길어서다. 계속 삽질을 해서 구덩이에 흙을 퍼넣는데 구덩이가 너무 깊어서 흙이 바닥에 ‘척-’하고 쌓이는 소리가 안들리거나 소리는 들리는데 구덩이가 너무 넓어서 해도 해도 안 메워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면 자꾸 옆에 있는 사람은 얼마큼 했나, 뭐 하고 있나 둘러보게 된다.


이전의 나라면 구덩이를 파고 이미 들어가서 소주 한 병 까고 누워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몰아치는 파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때 가더라도 인생의 좋은 면을 더 많이 보는 사람이고 싶다. 쉽게 말하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데 요즘의 ‘긍정’이라는 말은 왠지 자기 계발 유튜브 쇼츠 썸네일 문구처럼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그래, ‘명랑’이 좋겠다. 명랑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전을 찾아보니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함, 유쾌하고 활발함이라고 한다. 요즘 자주 보는 최화정 선생님 유튜브 때문도 있겠지만 이 꼴 저 꼴 다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음의 바이브랄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인생이 별게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를 넘어 좋은 구석이 훨씬 더 많고 기꺼이 그것을 바라보고 나누겠다는 의지. 내가 느낀 명랑은 그런 것이었다.  


이 꼴 저 꼴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좀 심란하지만 많이 겪어내야 편해지는 나 같은 사람은 방법이 없다. 명랑해지려면 이 꼴 저 꼴을 다 보는 수밖에. 또 얼마나 숱한 시간들을 거쳐야 많은 일들이 무덤덤해질까. 기쁨에는 좀 덜 무뎌지고 아픔에만 무덤덤해지면 좋을 텐데. 세상에 공짜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뭐 때문에 심란해서 이런 글을 썼더라 기억도 안 나겠지만 내가 메워내든 메우지 못하든 이 구덩이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나 또한 내가 잘 돌봐줘야 하는 나이니 일단 이번 주는 잘 먹여서 달래 보겠다. 안되면 29CM 장바구니를 한 번 털어야지. 그래도 안되면 강남 신세계… 뭐 그건… 또 그때 생각하자. 사실 요즘만큼 나의 일상과 일신에 아무 문제가 없는 날도 드문데 내가 이제 좀 먹고살 만한가 보다. 웃겨 진짜ㅋ


+ 시무룩한 얼굴로 이 글을 쓰려고 메모장을 열었는데 아침 라디오에서 롤러코스터의 ’습관‘이 흘러나온다. 기분이 좀 좋아지는데? 오늘 하루는 어찌어찌 넘길 모양인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언젠가 하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