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없는 코딩일기, 운동없는 운동일지
비를 기도한 사람만이 그 비가 우연히 내린 것이 아님을 안다.
혹자는 비 올 때까지 기도한 인디언 기도라며, 기도하는 시점에 우연히 비가 내린것이라 말하지만,
그 말은 기도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이다.
기도를 해본 사람은,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이 필연적임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기도의 가치를.
그레이스 스토리. 이희돈 장로님의 간증에 나오는 이야기다. 딸이 의대에 합격했는데, 얼마나 어이없이 우연히 합격했는지. 의대에 가고싶었지만 그만한 점수가 나오지 않은 그레이스가 에세이를 써놓고 차마 제출하지 못하고 울며 방으로 들어갔을 때, 컴퓨터를 노리던 그녀의 남동생이 실수로 제출해버려 합격해버린 어이없는 사건. 여전히 점수는 안되는데, 에세이의 간증이 심사자의 마음을 울려 합격하게된 이야기. 우연이다. 누가봐도 절대적으로 Accident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게 우연이 아님을 아는 사람이 있다. 그 삶의 모든 것이 인도하심 가운데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인도하심 안에 있는 사람. 우연이 필연이 됨을 알게 될 때에 은혜라고 한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안다. 전적으로 본인의 잘남이 아님을.
헤세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계약관계에서 나오는 히브리어.
우리나라말로는 일반적으로 은혜, 긍휼이라고 번역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의미가 다는 아니다.
히브리어: 성막의 울타리(헤트) + 하나님의 보호(싸메크) + 문 (달렛) = 헤세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헤세드를 약속하기를 맹세한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헤세드)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서 행하여 보이라)
요셉은 술관원에게 헤세드를 구한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헤세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다. 주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서 선물을 주고싶음 주는거고, 아니면 마는거고.
그러나 아비멜렉과 요셉의 헤세드는 사실 조금 더 계약성을 띈다. 나는 너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너도 나를 기억해서 은혜를 베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는 방식은, 기분에 따라 주고싶음 주고 말고 싶은 말고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빚을 지운게 없는데, 우리에게 계약을 이행하시겠다고 한다. 어떤 신들에게 기도를 할 때는, 그 기분을 좋게 하기위해 공양을 하기도하고, 노력의 가상함을 보여드리기도 하고, 때론 그에 상응하는 고행을 해야하기도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기 원하신 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는 우리에게 그렇게 계약하셨다.
헤세드. 주시기로 작정하심.
그렇기에 우리는 구한다. 달라고 기도한다. 비를 내리시는 분께 비를 구하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께 필요를 구한다. 구한 자의 고행이 드는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것이 없고, 그 기분을 맞출것도 없으니 구차할 것도 없다. 다만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만 기억하면 된다. 믿음이다.
사실 기도의 이야기는 이것만이 끝은 아니다. 인간적으로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응답받지 못하는 상황도 있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복신앙의 이야기도 있기도하다. 헤세드를 더 이해해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일것 같다. 그러나 가장 먼저 기억해야할 사실은, 은혜는 아는 자만이 아는 것이고, 기도는 해본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헤세드)를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헤세드)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