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율 작가의 '일주일 취미'를 읽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하지만,
난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혹의 나이가 되면 흔들리지 않는다는데,
난 벌써 서른이 넘었지만
세상의 온갖 유혹을 다 받아보고 싶은 이 심정은 무엇일까.
삶이 불안하다.
인생에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어 보인다.
어제까지 남들의 우상으로 온 국민이 알던 어떤 연예인은 하루아침에 모든 인기를 잃고,
어제까지 아무도 몰랐던 어떤 정치인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고 또다시 미운 놈으로 몰리고,
당장 내년 집값이 어떨지, 내가 가진 주식은 오를지 떨어질지,
나는 내년에 결혼은 할 수 있는 걸일까.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참 즐거운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미래가 적어도 긍정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똑바로 살면,
그래도 괜찮은 미래가 있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불안하지만 그래도 잘해보자.
그러나 지금의 불안은 그런 느낌과 다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동일하나
낙관적인 미래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열심히 산다고, 바르게 산다고 좋은 미래가 찾아올까.
내가 지금 열심히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나름 나쁜 짓 안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지금처럼 산다면
나의 내년은 밝은 모습일까.
얼마 전 뉴스는 이십 대의 우울증이 4년 전에 비해 2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우울증과 조울증의 증가 속도가 가장 높은 게 지금의 이십 대이고
모든 부와 인기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십 대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럴만했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함이 만연한 시기이지 않은가.
나를 지키며, 나를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모두가 격려차원에서 할 수 있는 말임에도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해내야 한다.
세상이 흔들린다고 나까지 흔들리면 안 되지 않은가.
여기에 어떠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강도율 작가의 '일주일 취미'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이십대다.
부산에서 서울로 혼자 상경하여 자취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것들만 보더라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
TV에서의 이십 대가 아니라 현실의 이십 대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저자도 흔들린다. 쉽지 않다. 열정과 꿈같은 말이 이전같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은가 보다.
그러나 작가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씩 하나씩 익혀가고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행동.
바로 '취미'이다.
"배우면 꼭 돈으로 결과가 나와야 합니까? 일이 아니라 놀이인데!"라고
이 시대의 어른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발칙한 질문을 하는 이 책의 저자는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BTS를 보면서
"내일을 기대하게 해주는 거라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쓸데없다고 느껴져도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모두가 잘하는 게 아니면 잘못하는 거라고 말하는 죄책감 권하는 사회 안에서
나를 사랑하기란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 일이다.
착한 얼굴과 착한 몸매라고 말하는 도덕성의 잣대에서는
내 얼굴과 몸매는 분명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BTS가 말하는 "Love Myself"가 쉬운 말이면서도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회사도 나를 보증해줄 수는 없다. 회사보다 중요한 건 내가 아니던가.
"회사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건강한 내가 있으니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이다.(중략)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당당한 삶이 먼저였다."
"그때는 ‘나는 이렇게 잘하고 있어요’가 아니라 ‘ 나는 살아있어요’로
진정한 삶의 충만을 나의 시점으로 나의 중심에서 스스로 채워나갈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음은,
작가 스스로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살게 하는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신박한 '취미'를 더했다.
"적당히 밋밋한 일상에 특별한 행복이 더해"줄 수 있는
바로 레알러브, "진짜 사랑하기"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냐고 투덜대면서도 하고 있는 인문학 교육봉사.
지역 아동센터에서 몇 년째 논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 특별한 행복이 더해지며 살아갈 만한 가치를 느끼게 된다."
모두가 살기 힘든 사회라고 말한다.
그것이 단순히 앓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참다 참다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허무주의나 쾌락주의로 빠지기 쉽고,
그러다 보면 더욱 삶에서 멀어지게 되고 점차 우울해진다.
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알겠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와 동시대에 동일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한 자아가
본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자,
삶을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품을 마음도 갖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나를 사랑하는 원동력이 된다.
성공한 누군가의 영웅적인 서사를 보는 것을 우리는 비범하다 말한다.
그러나 평범한 누군가가 평범한 일상을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것을
어찌 우리가 비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회사가, 자격이, 학벌이, 내가 두른 명품, 내가 쓰는 카드가
나를 나타내 준다고 집착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나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