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바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nguxxi Jul 11. 2022

나는 누구인가?

써야만 하는 사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내가 정의하는 지금의 나는 '써야만 하는 사람'이다. 


짙고 그윽한 밤, 조명이 내뿜는 적당한 온기를 덮으면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 여기엔 규칙이 있다. 그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 속으로 가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는 항상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쌓여 있는 응어리를 끌어올려 내뱉어야 하는 일, 그 일에 눈물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한낮의 나는 도도하고 똑똑하며 철두철미하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정이 없다고 하고, 또 깍쟁이라고도 한다. 과하게 발달한 예민함과 센스로 무장한 나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인생을 정말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염없이 조각나는 밤과 마주하기 전까진.


4년전 나는 조각나는 밤을 매일 만났고, 매일 나는 파편에서 갈라져 나온 가루만큼 작아졌다. 머릿속에는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떠다니며 마음껏 유영했다. 발이 닿지 않는 어린아이는 매일 울다가 지치기를 반복, 날카로운 것들이 활보하는 망망대해에서 그저 발버둥만 쳤다.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꿈은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를 강하게 끌어당겼고, 그 힘이 커지는 만큼 '관계는 나를 버림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라는 이상한 신념도 커져갔다. 


남에게 부지런히 맞춰나가면서 나는 날로 작아졌고, 손 땀은 날로 증가했고, 결국 무너졌다. 몸의 힘이 풀리면서 갑자기 청각과 시각이 흐려지는 끔찍함을 경험했을 때 처음으로 시간들 사이에도 무소속의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와 내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오직 나 혼자 남겨진 공백의 시간에 대한 충격으로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기에. 


하나씩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를, 나의 마음을, 나의 행복과 슬픔을.


몇 시간을 낙서로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우는 일이 있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차차 깨달았다. 글은 나에게 나를 숨기거나 버리지 않아도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유일한 나의 처방전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난 오늘도 쓴다.

무엇이라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은 반복된다. 여전히 무서운 꿈이지만 언젠가부터는 그 두려움 속에서 새로운 모습들을 포착한다. 무서운 것들은 여전히 나를 가라앉게 하지만, 펼쳐지는 장면은 매번 다르다. 눈에 담기는 바다와 하늘의 색, 살에 닿는 물의 온도, 온 감각으로 느껴지는 날씨가 제각각이다.


이렇게 나는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