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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guxxi Aug 03. 2022

당신은 어떤 인정욕을 갖고 있나요?

못해도 괜찮아

나는 20대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걸 빈틈없이 다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랐다.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예쁨을 받았다.


학교에서도 나는 남들이 보기에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다. 예체능 또한 곧잘 했다. 그래서 나는 뭐든 걸 다 잘하는 줄 알았고, 잘해야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해외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는 남들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일단 제 2 외국어를 일상생활에서 써야 하는 상황이 나를 자주 무기력하게 했다. 억울한 일 앞에서, 화가 나는 상황에서 100% 다 내뱉지 못한 언어들이 내 마음에서 쌓여갔다. 억지로 엉덩이를 의자에 오랜 시간 붙이고 있어도, 점수는 다른 외국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일상 속에서 은근한 무시를 당하는 외국인으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경영학과 필수과목 중에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배우는 수업이 있었다. 수강 신청을 할 때부터 손이 떨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과목인데, 그 이유는 기말 발표 전에 있던 즉흥적인 스피치(impromptu speech) 때문이었다. 스피치 당일 뽑기를 통해 나오는 주제를 가지고 30초를 생각한 뒤 스피치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결국 이 수업에 가지 않았다. 준비가 불가능했고, 과도하게 긴장을 하는 나는 분명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을 못 할 것 같았기에 그만큼의 점수는 포기했다. 내가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다는 사실에 겁을 먹었고, 망칠 것을 생각하니 감당이 되지 않아 피해버리고 말았다. 그날의 열등감과 그로 인해 남은 상처는 아직도 내 안에 크게 남아있다.


여전히 나는 남들에게 '모든 걸 빈틈없이 다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것 같다. 다만, 그 정도는 낮아지면서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자존감이 낮아지는 날이면 다 잘하지 못하는 나를 채근하고 원망하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모든 걸 빈틈없이 다 잘하는 남을 위한 내가 아닌, 나를 더 생각하고 깊이 사랑하는 시간으로 채워보려고 한다.


내 인생이다. 나만큼 내 인생에 관심을 갖고, 사랑해 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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