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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Oct 20. 2023

뒷모습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 봐 주는 사람


 아버지는 그냥 참으로 답답한 사람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

고향인 부산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미리 새 둥지를 트시고

우리 형제들을 마중하러 나오신 서울역에서,

"아빠 이제 우리 집으로 가는 거예요?" 하는 물음에 "우리 집이 어딨냐. 남의 집에 얹혀사는 집이지"라고 지나치게 정직하게 말씀하시는 분.


술 좋아하시고, 친구 좋아하시고, 바둑은 무한한 취미고..

그렇게 유흥에 취하시다 그만 굴러 떨어진 계단에서 눈썹 위를 몇 바늘이나 마취도 못하고 꿰매고 나시더니,

교회 장로님이셨던 큰아버지가 소개해 주신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몸만 다니시던 교회였는데,

하나님을 그때서야 제대로 만나셨나 다.


주일 아침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교회에서 봉사도 하시고,

헌금도 열심히 드리시고,

중얼중얼 서툰 기도를 하시지 않나

좋아하시던 술도 끊으시다니..

가 알던 우리 아버지가.. 맞는 걸까?


급기야 부활절 전 성금요일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하루종일을 한 끼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마침 친구분들과 등산모임이 있던 그날, 온전히 하루를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시면서 '금식'을 하시다니..

 

그런데

가 우리 아버지의 특징 중 가장 인상적으로 여기는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어떤 모임이든 자리가 파하고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그 순간에 제일 먼저 그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항상 다른 이들에게 먼저 가라 하시고 차에 타고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본 후 마지막으로 자신이 떠나시는 거다. 


상대가 연장자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어린 동생이나 친척들 지인들인 경우에도 되도록 먼저 떠나는 모습을 보시고 그제야 그 자리를 떠나시는 아버지.

처음에는 무슨 하인이 주인 마중하는 것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싫어 먼저 가시라고 등도 떠밀어 보았는데, 끝까지 남아 다른 사람들 가는 것 보고 가야 맘이 더 편하시다 하셨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사소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보다 남을 더 위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마음인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의 말투 그의 행동이나 버릇 사소한 것 하나라도 닮고 싶어 다.

아무리 작고 별 것 아닌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사람들에겐 그분의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나는가 다.

단 돈 10원에도 벌벌 떠시고, 아직도 하루에 천 원짜리 한 장만 있으면 콩나물 두부 사다 밥 해 먹고도 남는 돈인 줄 아시는지 생활비 몇 푼에도 짜디짜게 구시는 아버지가 예수님을 닮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우리 아버지에게 가끔 예수님의 향기가 배어남을 느낀다. 새벽기도도 잘 못 가시고 모임에서 아버지가 기도하실라치면 어색해질까 조마조마하기만 한데 말이다. 70이 넘은 나이에 암판정을 받으셔서 많이 놀라셨겠지만 생명하고 연관되어 가장 연약한 그 순간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놀라운 순간이었다고 고백하시는 아버지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끝까지 남아 배웅해 주는 사람.

나보다 남의 마음을 더 헤아려줄 줄 아는 사람.


그저 평범하기만 한 우리 아버지지만 평생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

그분의 모습처럼 변해가는 사람으로 사시길..

그래서 앞으로 남아 있는 삶도 예수님의 향기로 그윽하게 배어나는 사람이길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사랑하면 닮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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