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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Oct 20. 2023

구멍가게

라떼는 말이야


내 어린 시절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은 시큼한 막걸리 냄새로부터 시작된다.

삐그덕 거리는 나무유리창 미닫이 문을 빼꼼히 열면 늘 먼저 나를 맞이하던 구멍가게의 막걸리 냄새.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달팠던 우리 부모님들은 
오후 늦게 피곤에 절은 몸을 집에 내려놓으시고선 

노란 주전자를 손에 쥐어 주시며 가게에 갔다 오라고 하셨다.


물론 돈은 주지 않으셨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가게 앞에서 머뭇머뭇거리다가 
막걸리 한 되만요.. 하고 받아 들고선 외상 해주세요..라는 말만 매일매일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삼 형제 중 누구도 그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기에 

아버지가 오신다 싶으면 놀다가도 티브이를 보다가도 공부하는 척..혹은 자는 척해야만 했다.


나는 막내라 자주 걸려서 가곤 했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가게에는 막걸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는 것이다.


왜 막걸리만 사오시라는 걸까..

한 번쯤은 네가 먹고 싶은 과자도 하나 집어와 하실 수도 있잖은가..?


더운 여름엔 네모난 아이스크림통을 열면 
드라이아이스를 담아 묶어 놓은 고무보자기 사이로 하얀 김을 드러내며 탐스럽게 굳어있는(?) 아이스바.

최고의 단맛을 선사했던 줄줄이 사탕. 그것이 안되면 색색깔의 모양으로 길게 늘어져 있던 이름도 알 수 없는 쫄쫄이 과자. 그것들은 어린 나의 시선을 고 정시키에 충분했다.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들이 조르면 
없는 형편에도 돈을 조금 쥐어주시거나 아니면 특별히 외상을 허락하시곤 했다.


아무리 집에서 만들어 주시는 간식이라도 
구멍가게에서 돈을 내고 내가 먹고 싶은 사 먹는 기쁨만큼은 못 할 것이다.


그때만큼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만졌다가 놓을 수도 있고 
그 많은 것들 중에서 고를 수도 있는 특권이 생기는 것이다. 그날 특별히 나에게 선택된 먹거리들이래 봐야 싸구려 불량식품들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먹고 배탈이 날지언정 구멍가게에서 내가 느꼈던 풍족함과 만족감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어렸을 적 구멍가게는 동네 사랑방이기도 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몰려 즐기는 특별한 즐거움도 있었으니. 단 돈 20원만 있으면 내 전용 국자와 막대까지 생긴다.


그것과 설탕을 받아 들고 연탄불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센 불이 나오는 구멍을 골라 올려놓고 기분 좋게 설탕을 녹인 후 적당할 때에 소다를 뿌려서 잘 부풀린 다음 편편한 탁자에 놓고 잘 눌러놓고 별모양 쇠를 탁 찍어 침 묻혀가며 모양대로 잘 오려내는 과정을 거치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먹거리가 하나 탄생하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엔 내 입으로 쏙 들어가 버릴 운명이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기쁨은 지금 달고나를 돈 주고 사 먹으며 추억을 되새기는 맛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늘 생활고에 찌든 부모의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 
주전자를 들고 다녔던..혹은 적은 돈으로 기대 이상의 많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시큼한 막걸리 냄새까지도 좋았던 구멍가게..


그 속엔 20원짜리 뽀빠이과자와 20원짜리 아이스바 
그리고 50원짜리 삼양라면이 있었고 또 10원짜리 불량식품도 있었으며 그것들을 사 먹으며 누구보다도 행복해했던 어린 날들과 눈물 나게 고달픈 서민들의 인생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어둡고 칙칙하기만 한 기억이 아닌 것은 왜일까?


새로운 것, 미래 지향적인 것, 그리고 앞서 나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요즘 
예전 그 구멍가게의 추이 청산되어야 할 옛것이 아니라 생각하면 웃음 나고 아련하게 추억에 젖어들게 만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귀한 보석같이 느껴지니 행복하다.


때국물에 젖은 얼굴을 꼬깃꼬깃한 옷으로 문대가며 
싸구려 불량식품 하나를 들고도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기억을 가져서 행복하다.


누가 추억을 아름답다 했던가..


그 시절의 기억이 그때의 꼬깃꼬깃한 내 모습이 누런 사진으로 찍혀서 나풀거리듯 내 가슴 한편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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