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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Oct 20. 2023

추억의 사진

with 아빠


어린 시절

추운 겨울처럼 모질고 고된 삶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이름은

떠올리기만 해도

잊히지 않는 따뜻하고 가슴 아린 추억이 되어

동그마니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새벽 푸르스름한 빛이 거둬지고 모든 사물이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아침처럼

부모님의 힘들고 고된 삶이 저 역시도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더 빨리 철들게 만들었나 봐요.


문득 아빠 생각이 나 전화를 걸어봅니다.

전화기에 뜬 번호가 막내딸 집번호인걸 아셨는지 받자마자

 "응 딸이냐?" 하십니다.



아빠,


아빠는 어린 시절 저에게 어떤 추억의 사진으로 찍혀 있으신지 아셔요?

시큼한 막걸리 냄새 가득했던 부산 산동네 구멍가게가 기억이 나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달팠던 아빠는

오후 늦게 피곤에 절은 몸을 집에 내려놓으시고선 노란 주전자를 손에 쥐어 주시며

가게에 갔다 오라고 하셨죠. 물론 돈은 주지 않으시고요.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가게 앞에서 머뭇머뭇거리다가 막걸리 한 쾨만요..

하고 받아 들고선 외상해 주세요..라는 말만 매일매일 되풀이해야 했어요.


우리 삼 형제 중 누구도 그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기에

아버지가 오신다 싶으면 놀다가도 티브이를 보다가도 공부하는 척, 혹은 자는 척했었죠,

아빠..

저는 막내라 자주 걸려서 가곤 했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가게에는 막걸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는 것이었어요. 왜 막걸리만 사오시라는 걸까?

한 번쯤은 네가 먹고 싶은 과자도 하나 집어와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더운 여름엔 네모난 아이스크림통을 열면 드라이아이스를 담아 묶어 놓은 고무보자기 사이로

하얀 김을 드러내며 탐스럽게 굳어있는(?) 아이스바.

최고의 단맛을 선사했던 줄줄이 사탕.. 그것이 안되면 색색깔의 모양으로

길게 늘어져 있던 이름도 알 수 없는 쫄쫄이 과자라두요.


가끔 엄마가 조금씩 손에 쥐어 주시는 돈으로 거친 허기를 달래곤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빠는 참 냉정하게도 자신만 생각하시는 서운한 분이었죠.



부산을 떠나 온 가족이 새롭게 정착할 서울로 이사를 오던 날.


서울이란 곳에만 오면 이전의 지긋지긋한 생활과는 정말 달라질 것만 같아 행복했던 우리 형제를 아빠가 데려간 곳은 낡고 어두운 단칸방이었습니다.


다섯 식구가 누우면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작은 방안에 들어설 땐

저도 몰래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답니다.


그 해 겨울.


그 움막 같던 작은 방은 찬바람이 스며들고 햇볕이 들지 않아 정말 춥고 어두웠습니다. 한 달 내내 일하셔서 벌어 온 돈으로 우리 삼 남매 등록금에다 생활비에다 이것저것 다 내고 나 면언제나 적자일 수밖에 없던 가난한 살림에 ‘아빠 너무 추우니 아주 조그만 난로 하나만이라도 사주세요.’

이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집에 돌아오면 아랫목으로 달려가

 빨간 담요 속으로 손을 쏙 집어 놓고 장난처럼 입김을 호~ 하고 불면

입에선 긴 연기가 피어나곤 했었죠.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있어도 먹고 싶은 것 절대로 입밖에 내면 안된다,

괜히 말을 꺼냈다간 해 주지 못하실 부모님 마음만 더 아프실 거다 하는 생각에

감히 그런 말을 내뱉지 않는 것은

우리 형제들 사이에 불문율처럼 지켜지는 약속이었답니다.


밤늦게 tv를 보고 있다가 귀가하시는 아빠의 술 취한 목소리를 들으며

자는 척 꼼짝도 안 하고 누워서 아빠의 한탄스러운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겨울이라는 것이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너무 춥게만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아빠가 갖고 싶은 것 참지 못한 막내가 무심코 투정 부리듯

 '아빠 올해 엔 난로하나만 꼭 사주세요.. 앉아 있으면 코끝이 너무 시려요.’

하는 말에 어디론가 나가셔서 하얀색 바탕의 석유난로 하나,

그리고 석유한 통 든든히 사 가지고 오셔서 방안에 피워주셨지요.

석유난로에 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제 맘도 아빠의 사랑으로 얼마나 빨갛게 달아올랐는지..


거기다 오랜만에 찌들지 않은 아빠와 우리들의 웃음소리..

흥에 겨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부르시던 아빠의 노래 속엔

왜 지금에서야 알 것만 같은 설움이 배어 있었을까요..?



아빠,


우리 형제들이 늘 생활고에 찌든 부모의 고달픔을 이해 못 해 속상하게 만들어 드리진 않았는지요.. 어린 날들 우리들도 아빠 못지않게 눈물 나게 고달픈 날들이 많았었지만 그것들이 제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어둡고 칙칙하기만 한 기억이 아닌 것은 또 왜일까요.


우리들의 추억이 없애 버리고만 싶은 옛것이 아니라 생각하면 웃음 나고 아련하게 추억에 젖어들게 만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귀한 보석같이 느껴질 수 있어서 행복해요.


때국물에 젖은 얼굴을 꼬깃꼬깃한 옷으로 문대가며 싸구려 불량식품 하나를 들고도 좋아했었던 어린 시절, 풍족치 않음이 세상에 대해 좀 더 일찍 눈이 뜨게 만들었고 주위 다른 아이들보다 때론 더 슬프게도 때론 더 가슴 아프게도 만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귀한 아빠의 그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를 기억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추운 겨울날 아빠가 사주신 빨갛고 따뜻했던 난로에 담긴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마음 벅차올라요.


아빠,


그 시절의 추억이 누런 사진으로 찍혀서 나풀거리듯 제 가슴 한편에 조용히 내려앉네요.

오늘따라 그 속에 환하게 웃음 짓고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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