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가난한 산동네에 살았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형편이 안돼
열심히 나갔던 교회학교에서 선생님과 계단에 앉아 있노라면
산을 온통 뒤덮은 낮고 허름한 판잣집들 사이로 제가 볼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드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있는 곳이었죠.
우리 엄마는 9형제의 둘째로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셨지만
우리 아빠를 만나 결혼하신 후 모진 시집살이에 생활고에 찌들 대로 찌든 삶을 사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는
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신다고 항상 비싼 옷에 구두며
학용품까지도 좋은 걸 사주셨어요.
오죽하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절 돈 많은 집딸로 알고
엄마를 전교어머니부회장에 추천하셨다는 말을 전하셨을 때
요구르트배달을 하시던 엄마가 부끄럼을 무릅쓰고
직접 담임선생님집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셨다고 합니다.
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우연히 만나게 되는 야쿠르크 가방을 들고
산꼭대기를 돌아다시는 엄마의 모습이 싫어 참 많이도 외면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산동네 그 긴 계단의 끝에
누군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더군요.
베이지색모자와 요구르트배달원옷을 입은 우리 엄마였습니다.
어디로 갈 데도 없었던 저는 쭈뼛쭈뼛 엄마한테로 다가갔는데 뒤에서 짠하고 내미시는 것은..
그 당시 제가 최고로 갖고 싶었던 마론인형이었어요.
보통 싸구려 인형하고는 확연히 다른 정말 예쁜 인형이었습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와 온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면서 좋아했던 그 인형.
라면하나에 45 원하던 시절에 7천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셨다는 그 인형.
언젠가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가던 길에 양장점에 걸려있는 새빨간 꽃무늬의 드레스가 너무도 갖고 싶어 그 집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저거 사 줘, 사달라고~~!!" 라며 울고 불고 생떼를 썼던 기억도 납니다.
고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결국 엄마가 사주셨던 그 드레스.
가난한 산동네 꼭대기에 살면서 내가 가난한지를 모르게 해 주시려고 하셨던 엄마.
우리 엄마가 고무공장에 다니 실 때 일이었어요.
감기로 펄펄 끓는 열을 주체 못 해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 방안을 뒹굴뒹굴 구르고 있던 제가
몇 시간째 아파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방안 가득 비명처럼 들리더니
초등학교 들어간 다 큰 딸을 업고 그 가파른 산꼭대기를 내려와
몇 정거장이나 떨어져 있는 약국까지 울면서 뛰어가셨던 엄마의 축축했던 등이 기억납니다.
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없었기에
그렇게라도 엄마냄새를 맡을 수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엄마! 우리 엄마..
사는 게 너무 힘이 들고 시집살이가 너무 고달파 죽으려고 약까지
먹고 자식들 생각에 목이 메어 다시 일어나셨다던 산동네 우리 엄마.
엄마를 생각하면 더 눈물 나고 마음이 아려오는 일들이 많지만
더 중요한 건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듯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날들에 대한 기쁨이에요.
I
엄마!
너무 사랑해요. 살아있는 날들 하루하루를
꼭 꼭 눌러 담아 넘치고 흘러내리도록
엄마에게 무엇이든지 다 해 드리고 싶을 정도로
엄마를 사랑해요!
사랑하는 엄마!
부디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엄마를 사랑하는 막내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