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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Oct 20. 2023

산동네 우리 엄마

사랑하는 엄마에게

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가난한 산동네에 살았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형편이 안돼

열심히 나갔던 교회학교에서 선생님과 계단에 앉아 있노라

산을 온통 뒤덮은 낮고 허름한 판잣집들 사이로 제가 볼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드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있는 곳이었죠.


우리 엄마는 9형제의 둘째로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셨지만

우리 아빠를 만나 결혼하신 후 모진 시집살이에 생활고에 찌들 대로 찌든 삶을 사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는

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신다고 항상 비싼 옷에 구두며

학용품까지도 좋은 걸 사주셨어요.

오죽하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절 돈 많은 집딸로 알고

엄마를 전교어머니부회장에 추천하셨다는 말을 전하셨을 때

요구르트배달을 하시던 엄마가 부끄럼을 무릅쓰고

직접 담임선생님집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셨다고 합니다.


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우연히 만나게 되는 야쿠르크 가방을 들고

산꼭대기를 돌아다시는 엄마의 모습이 싫어 참 많이도 외면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산동네 그 긴 계단의 끝에

누군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더군요.

베이지색모자와 요구르트배달원옷을 입은 우리 엄마였습니다.

어디로 갈 데도 없었던 저는 쭈뼛쭈뼛 엄마한테로 다가갔는데 뒤에서 짠하고 내미시는 것은..

그 당시 제가 최고로 갖고 싶었던 마론인형이었어요.

보통 싸구려 인형하고는 확연히 다른 정말 예쁜 인형이었습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와 온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면서 좋아했던 그 인형.

라면하나에 45 원하던 시절에 7천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셨다는 그 인형.


언젠가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가던 길에 양장점에 걸려있는 새빨간 꽃무늬의 드레스가 너무도 갖고 싶어 그 집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저거 사 줘, 사달라고~~!!" 라며 울고 불고 생떼를 썼던 기억도 납니다.

고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결국 엄마가 사주셨던 그 드레스.

가난한 산동네 꼭대기에 살면서 내가 가난한지를 모르게 해 주시려고 하셨던 엄마.


우리 엄마가 고무공장에 다니 실 때 일이었어요.

감기로 펄펄 끓는 열을 주체 못 해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 방안을 뒹굴뒹굴 구르고 있던 제가

몇 시간째 아파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방안 가득 비명처럼 들리더니

초등학교 들어간 다 큰 딸을 업고 그 가파른 산꼭대기를 내려와

몇 정거장이나 떨어져 있는 약국까지 울면서 뛰어가셨던 엄마의 축축했던 등이 기억납니다.


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없었기에

그렇게라도 엄마냄새를 맡을 수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엄마! 우리 엄마..

사는 게 너무 힘이 들고 시집살이가 너무 고달파 죽으려고 약까지

먹고 자식들 생각에 목이 메어 다시 일어나셨다던 산동네 우리 엄마.

엄마를 생각하면 더 눈물 나고 마음이 아려오는 일들이 많지만

더 중요한 건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듯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날들에 대한 기쁨이에요.

I
엄마!

너무 사랑해요. 살아있는 날들 하루하루를

꼭 꼭 눌러 담아 넘치고 흘러내리도록

엄마에게 무엇이든지 다 해 드리고 싶을 정도로

 엄마를 사랑해요!


사랑하는 엄마!

부디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엄마를 사랑하는 막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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