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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영하는 오드리 Oct 05. 2022

문학과 예술의 기묘한 만남5

5.한강 + 시오타 치하루 =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얽힌 매듭을 풀다

5. 한강() + 시오타 치하루(In memory) =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얽힌 매듭을 풀다     

현재(2022년 8월) 전시중인 설치미술가인 ‘시오타 치하루’의 <In memory> 개인전을 다녀와서 며칠 동안을 충격과 감동의 도가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공간에 이렇게 많은 실들이 우리의 시선을 교차시키고 우리를 가두는 듯 하면서도 시야를 확장시키는 복잡한 감정을 일으켰다. 무언가 심연의 담론을 내포하고 있지만 작가의 이력을 전혀 모른 채 독특한 오브제들을 통해 구구절절하게 아니면 쿨하게 담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기어코 두 번 갤러리에 찾아가 조금이나마 그녀의 얽히고 설킨 실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오타 치하루의 작은 회화작품은 그녀 내부의 심장에서 두세 가닥의 붉은 실이 뿜어져 나와 거대한 우주 또는 바다 혹은 타인의 심장들을 여러 가닥의 실타래로 다양한 결로 휘감아 연결되어 같으면서도 다르게 변주된다. 이 정도의 인생의 깊이를 드러내려면 60대 이상된 경륜이 지긋한 화가일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72년생으로 나와 같은 세대의 일본인으로, 독일에서 예술공부를 하고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어쩌면 일본,독일,미국이라는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인간의 공통된 본질을 다루고자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게 된다.      

아직 시오타 치하루에 대한 도서나 자료들이 많지 않았지만, 그녀가 최근 한국 언론매체를 통해 인터뷰한 영상을 통해 그녀의 이번 <In memory>전시회의 대략적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시오타 치하루는 이번 전시회에서 우리나라 유명한 작가인 한강의 소설<흰>을 읽고 삶과 죽음을 얽히고 설킨 흰색 오브제로 담은 이야기들에 끌려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한강이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작정한 여러 리스트들 중 ‘배내옷’제목의 글에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까만 눈을 뜨고 어머니의 얼굴 쪽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스물세 살의 엄마는....반짇고리 상자를 뒤져보니 작은 배내옷 하나를 만들 만한 흰 천이 있었다. 산통을 참으며, 무서워서 눈물이 떨어지는 대로 바느질을 했다...마침내 혼자 아기를 낳았다...피 묻은 조그만 몸에다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혔다. 죽지 마라 제발...제발 죽지 마. 한 시간즘 더 흘러 아기는 죽었다. 죽은 아기를 가슴에 품고 모로 누워 그 몸이 점점 싸늘해지는 걸 견뎠다.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책_한강_흰_배내옷_p18~19)     


시오타 치하루는 암을 두 번이나 경험하고 임신 6개월째 양수가 터져 병원에서 아이가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강 소설의 이 책에서 ‘혼자 출산한 아이가 제발 죽지말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흰 배내옷을 입고 태어난지 2시간만에 죽’었다는 이야기에 감정 몰입을 절로 하게 되었으리라.     

전시장 2층을 하얀 굵은 실을 바닥에서 천장까지 얽히고 설켜 거대한 포식물인 왕거미의 소굴처럼 꾸며 놓았다. 그 한가운데에 앙상한 뼈대만 남은 흰 목조 배 위에  사람없이 흰 드레스 세 벌만이 거미줄에 휘감겨 있다. 이 배는 단테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구해주고 그를 죽음의 세계로 이끄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마치 이승에서의 삶이 다하고 저승으로 물 건너가고 있는 이 옷의 주인들을 실고 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의 서늘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오로지 하얀 색으로만 뒤덮힌 흰 실들과 흰배,흰드레스 그리고 흰 거미줄 사이마다 흰 종이들이 걸려 있는데 아마도 이 종이들이 흰 배에 걸려 있는 옷의 주인들의 이승에서의 여러 기억들이 담긴 장면들을 담고 있는 듯 하다.


이 기억들을 이승에 두고 가려니 미련이 많은 한을 흰 드레스에 담아 두고 못내 저승을 떠나지 못하는 건지 뭔가 애절함, 안타까움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 같다. 한강의 흰 소설에서 너무나 어렸던 엄마는 첫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어보지도 못한 채 묻어야만 했고, 화자는 그 죽은 언니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엄마의 풀리지 않는 상실감을 내내 마음 속 깊이 묻어두어야 했다. 그 애통함과 한은 얽히고 섥힌 거미줄의 매듭들 즉, 현세에서 안 좋았던 기억들이 풀려야 사라질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암담하지만 내가 이 얽힌 거미줄의 고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주고 싶다. 이젠 더 이상 아무도 아프지 않게 말이다.


#한강#흰#시오타치하루#인메모리#거미줄#삶과죽음#경계#단테#신곡#베르길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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