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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영하는 오드리 Oct 08. 2022

문학과 예술의 기묘한 만남6

밀란쿤데라 + 프리다칼로 = 존재의 가벼움으로 예술의 무게를 이겨내다

6. 밀란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프리다 칼로(상처입은 사슴

    = 존재의 가벼움을 예술의 무게로 이겨내다   

  

어떤 유형의 관계이든 사랑 앞에서는 확률적으로 미세한 차이더라도 약자와 강자가 있는 듯하다. 사랑의 약자에 속한 이는 한쪽으로 기운 존재의 가벼움에 휘청거릴 만큼 마음의 상처가 가득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 사랑의 힘의 비대칭성으로부터 벗어나 균형을 찾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동원하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사랑의 강자는 이런 가벼운 약자에 대한 저항에 권태로운 무거움을 느끼며 관계의 단절을 모색해본다. 하지만 어느 새 이미 약자의 치명적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방황하면서 자신이 그 사랑의 거미줄에 깊이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바로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말의 강력한 힘에 종종 끌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도 맥락에 맞든 맞지 않든 이 용어를 쓰고는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이 책을 한번쯤 읽어 봤다는 뉴앙스를 풍겼던 적이 있었다. 

체코 프라하의 정치적 혼란으로 모든 것이 불투명하던 1968년대에, 토마시와 테레사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불균형하고 비대칭적인 갈등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게 된다. 토마시는 지금껏 자신의 신조로 삼고 살아온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으로 수많은 여자들을 향한 방탕한 사랑을 쫓아왔다. 그러다 그는 테레사에 운명적인 찰나의 사랑에 느껴 안나 카레니라라는 책을 들고 온 그녀를 마치 방수된 바구니 안에 태워진 채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서 건져 올린 아이로 자신의 마음에 각인시킨다. 그 이후로도 그는 가벼운 사랑을 추구하지만 어쩔 수 없는 그녀의 무거운 삶 속에 묘하게 빠져 들게 된다.     


토마시가 테레사에 각인한 아이의 존재는 성경책의 모세에 관한 이야기로, 당시 이집트 왕이 이스라엘 민족 중에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모세의 어머니가 바구니에 그를 담아 강에 띄워 보냈다. 그만큼 태어나자 마자 죽을 위기에 처해 보호가 필요한 아이의 이미지를 테레사의 전령으로 입혀 토마시는 그녀가 죽고 나면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어려운 존재론적 철학의 담론 때문에 매력적인 제목만큼 한번에 읽어내기 힘든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억압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영혼과 육체의 이원화된 사랑의 비극을 보여주지만 진실한 사랑과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자신을 찾아가려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화가가 바로 프리다 칼로라고 생각된다. 어려서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늘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던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자신에게 가혹하게 내려진 운명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그러다가 22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라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이 결혼은 프리다 칼로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큰 변화와 비극을 가져오게 된다. 무엇보다 결혼 이후로도 이어지는 디에고 리베라의 여러 불륜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로 미래보다는 현재의 사랑에만 빠져 버렸다.


프리다 칼로는 남편 디에고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녀에게 정신적인 상처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발가락이 괴사되어 잘라내는 수술도 하고 두번 유산도 하게 되면서 참기 힘든 시련을 겪었다. 그러던 중에 더 충격적인 일이 밝혀졌으니, 바로 친여동생과 디에고 리베라의 불륜관계를 알게 되면서 인간적인 모멸감과 극한 배신감과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결국 이혼을 선택한다.

가족인 친여동생에 대한 배신과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불신에 얼마나 깊은 상처 속에서 괴로워했을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이렇게 해서 그려진 그림이 바로 <상처 입은 사슴,1946>이다.  

<프리다 칼로_상처 입은 사슴_1946>

프리다 칼로의 얼굴을 한 사슴은 여러 발의 화살들을 온몸으로 맞으며 피를 흘리면서 처연스럽게 우리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다. 이 여러 화살들은 바로 그녀가 그토록 사랑한 디에고의 불륜들로 인한 배신감, 괴로움, 상처, 외로움들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바로 숨이 끊어질 것처럼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여도 강인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것은 아마도 어떠한 장애도 부딪쳐도 결국엔 다시 일어나겠다는 무서운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화살 하나하나에 큰 상처를 입고 쓰러져서 더 이상 일어날 의욕을 상실한 채 다가오는 거대한 위험에 무기력하게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힘든 역경 속에서 굳은 의지를 보여주려는 그녀의 정면 응시를 통해 놀라운 정신력에 감탄하게 된다.

프리다 칼로는 이렇게 뼈아픈 시련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디에고 리베라를 잊지 못하고 그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갈구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마에 디에고 리베라 초상화를 그린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낼 정도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집착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 앞에 약자였던 테레자와 프리다 칼로는 존재의 무거움을 간직한 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부단이 노력해왔다. 토마시와 디에고로부터 존재의 가벼움으로 치부당하지 않도록 테레자는 그와의 관계의 단절을 선언하고 자기의 길을 가려고 했다. 프리다 칼로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화풍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예술적으로 멋지게 승화시켰다.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고독하고 외로운 사랑을 이겨낸 테레자와 프리다 칼로. 이들의 이번 생은 허락되지 못했지만 다하지 못한 행복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어디서든 꼭 이루게 되길 깊은 위로와 잘 견뎌냈던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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