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예영하는 오드리 Oct 21. 2022

문학과 예술의 기묘한 만남8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 조지아 오키프 = 사막 같은 인생에서 홀로서기

8.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영화 콜레트) + 조지아 오키프(하얀 붓꽃

   = 사막 같은 인생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하다


원작소설보다 영화로 재현해서 성공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콜레트’ 영화는 원작 <클로딘> 시리즈를 뛰어 넘어 콜레트라는 한 여자의 이름을 되찾고자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화려한 미장센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제대로 보여주었다. 

1900년대 초반 ‘콜레트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프랑스 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니 동시대를 함께 한 여성 예술가가 떠오른다. 바로 남편의 유명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사막으로 새 인생을 살아간 조지아 오키프이다.

과연 콜레트의 글과 조지아 오키프 그림 사이에 어떤 공감각적인 영감이 통할까?     


 먼저 콜레트는 클로딘 시리즈의 여성작가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남편의 대리작가로 살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자유분방한 젊은 여성의 톡톡튀는 도전적인 탐험기를 그려내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었다. 당시 완고한 가부장제와 통속적인 결혼제도에 저항하며 문학과 예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열정적으로 보여주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여성으로서 생소한 행위예술인 판토마임과 연극의 주인공에 도전하고, 자신 스스로가 브랜드와 장르가 되어 패션, 스타일 등 그녀의 모든 것을 유행시키며 ‘시대의 핫한 아이콘’ 이 되었다. 하지만 콜레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시련이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시대를 앞서나가게 한 것일까?    

 

프랑스의 작은 시골에서 살던 ‘콜레트’는 바람둥이 소설 편집자 ‘윌리’와 결혼하여 파리로 오게 된다.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모습에 익숙치 않은 콜레트는 자신의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고 하지만, 윌리는 그녀의 마음을 공감하기보다는 그녀를 나무라기만 한다. 게다가 윌리가 바람을 피우고도 “남자의 외도는 흠이 아니”라며 오히려 그녀 때문에 “유산과 자유를 포기했”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윌리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콜레트에게 학창시절 얘기로 글을 써보라고 하고, 그녀는 윌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글을 열심히 쓴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문체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여성적이라고 폄하하자, 콜레트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윌리는 그녀의 글에 남성 독자들을 위한 선정적이고 에로틱한 장면을 추가하여 출판사의 취향에 맞춘 글로 수정하여 출간한다. 당시 여성작가의 책은 안 팔리고 남성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윌리의 설득으로 그의 이름으로 책이 팔리게 되고 주독자층인 젊은 여성들의 관심사를 자극하여 크게 성공하게 된다. 윌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명예와 인기가 최고조로 달하게 되자, 콜레트가 좋아하는 정원 딸린 큰 시골집을 마련해주고 4시간 이상씩 클로딘 속편을 이어서 쓰게 했다.    

  

그녀가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아 책쓰기를 거부하는 데도, 방문을 잠가 가두고 ‘파리의 클로딘’을 쓰도록 강압적으로 대했다. 콜레트는 너무도 쓰기 싫었지만 오기로 버티며 마침내 써내려가고, 이 책은 이번에도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콜레트는 언젠가는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오히려 복수하듯이 써내려간 것이다. 

콜레트는 미시 공작부인을 만나 용기를 얻어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윌리에게 자신을 클로딘의 신작에 공동저자로 넣어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윌리는 돈에 눈이 멀어 그녀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신작을 쓰도록 협박만 할뿐이다. 결국 그는 클로딘의 모든 판권을 높은 금액으로 출판업체에 팔아버린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콜레트는 그를 찾아가 “클로딘은 그들의 자식이고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은 어린 시절의 모든 추억이며, 바로 그녀 자신”이라고 퍼붓는다. 그녀는 “자신이 윌리의 욕망을 실현한 도구에 불구했으며, 그가 결국 클로딘을 죽였고, 배신했다”고 절규한다.


 콜레트는 긴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그 당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수트를 입는 등 시대상 파격적이면서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유로운 삶을 찾기 시작한다. 

이렇게 주인공 콜레트는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상상하던 삶, 여자에게 주어진 순응적인 삶을 깨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당당히 살아내어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해주었다. <콜레트>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과 자유가 먼저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저항과 도전이 있었기에 우리가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조지아 오키프가 그려낸 다양한 꽃들은 우리가 흔히 보던 꽃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새로운 미지의 세상을 들여다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초현실적인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꽃이라는 평범한 소재로 이렇게 오묘하면서도 대우주의 생명을 담아낼 수 있었는지 이 그림들을 그려낸 조지아 오키프의 인생에 있어서 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조지아 오키프는 꽃들을 확대해서 우리에게 익숙했던 꽃잎들, 암술과 수술을 새로운 생명체처럼 표현해냈다. 또한 큰 볼륨감으로 낯설면서도 오묘한 색채의 꽃봉우리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겨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관능적이면서도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 중에서 <하얀붓꽃>은 거대한 흰 꽃잎들 사이에 옅은 핑크와 노랑, 초록색이 오묘하게 섞이면서 깊이감이 느껴지는 신비감을 주면서 블랙홀처럼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오키프는 자신의 복잡 미묘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서글픈 감성을 담아 꽃에 투영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의 예술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20세기 초 당시 미국 예술계의 기득권자들은 남성들이고, 다루는 소재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반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녀처럼 순수하게 ‘아름다운 것’을 그리는 것은 수준이 낮은 아마추어 작품이라고 폄하하는 평론가들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그녀처럼 화려한 큰 꽃을 그린다는 것은 당시 비평가들 사이에서 혹평과 비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게다가 조지아 오키프는 당시 유명한 사진작가인 스티글리츠와의 결혼 스캔들과 그의 유명세로 오키프의 작품이 과대평가를 받았다고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 그녀는 스티글리츠의 에로틱한 사진 모델로 소비되면서 그녀의 작품들은 더욱 여성적 선정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저속한 예술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녀가 그리는 꽃들은 단순히 보이기에 아름답기만 한 그림이 아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앞둔 미지의 세계를 보여준 것으로 어쩌면 오키프같은 여성화가들이 당시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며 그려냈을지 모른다. 꽃은 처음엔 화려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곧 한 세대가 가고 숙명적으로 곧 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품고 있다. 그래서 오키프의 꽃잎들의 존재는 크고 화려한 반면 고독을 품고 있듯 대부분 어두운 색조로 감추어져 있다.  

특히 크고 겹겹이 싸여 보일 듯 말 듯한 작고 미약한 암술과 수술이야말로 더 나아질 세상에 희망을 걸고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는 여성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의 생존력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녀는 무단히도 그녀를 억누르려는 모든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자신만의 그녀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작품 세계에만 몰입하였다.      


1917년 콜로라도 여행에서 사막과 계곡을 본 그녀는 큰 영감을 받고 특이한 형태의 바위와 강렬한 햇빛에 새하얗게 탈색된 동물의 뼈 등을 그려 자연 발생적인 대상들을 독특한 시선으로 추상적으로 그려냈다. 어쩌면 그녀에게 이런 상실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이처럼 더욱 깊이가 느껴지는 매혹적인 꽃들과 상처를 날 것 그대로 그려낸 동물의 뼈들로 승화시켜 낸 것 같아 그림들이 더욱 음험하면서도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그녀를 반짝 유명세를 띄워준 사람은 남편 스티글리츠였지만, 정작 그가 죽고 나서야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낸 그녀의 작품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한다. 스티글리츠가 죽은 해인 1946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여성 미술가 최초로 단독 회고전을 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뉴멕시코 산타페에 여성 화가 중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는다.     

결국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은 단지 유명인 남편 스티글리치의 영향력에 의해서 과대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독보적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성을 증명한 것이다. 이렇게 힘든 역경을 한결같은 작품 세계의 몰두하여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이름만으로 독자적인 타이틀을 찾아내어 인간 승리의 표본이 된 조지아 오키프에게 숭고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달로 가는 사다리_1958>

당시 불모지였던 여성 예술가세계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며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찾기 위해 힘든 여정을 살아온 콜레트와 조지아 오키프가 있었기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당연한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었음을 절감한다. 더불어 약자들의 인권조차도 소중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들이 <달로 가는 사다리>그림처럼 희생을 무릅쓰고 무모한 용기와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편안하게 안주하기 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딘가에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전 07화 문학과 예술의 기묘한 만남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