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벌레와 약점

by 분홍색가방

#4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치이익-


꽤 길게 이어지는 스프레이 소리, 그 근원은 바로 나다.

지금 나는 기숙사에 불법 침입한 생명에게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는 중이다.

살충제는 계속 뿌려지고 이제 축축해진 바닥에 널브러진 벌레를 보고야 참고 있던 숨을 쉴 수 있었다.

벌레, 그것은 나의 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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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벌레의 시체들은 물론이고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발끝부터 머릿속까지 소름이 확 끼쳤다. 창문을 확 하고 닫아버렸다. 다시는 그 창문을 열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숙사라는 곳은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인지라 사실 꼼꼼한 청소는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생각한다. 분명 소독도 하고 청소도 해주시지만 창틀까지는 차마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산 쪽에 있는 기숙사인지라 여름이면 (조금의 과장을 보태) 손바닥만 벌레들이 방충망에 달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벌레 공포증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와 2년 동안 룸메이트인 언니 역시 벌레를 혐오한다. 그러니까 즉 방 안에는 벌레를 잡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벌레가 들어온 것에 놀라서 벌레가 스스로 나갈 수 있게 방문을 열어 놓고 1시간을 휴게실에서 버텼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 벌레는 빛을 따라 방을 나서 줬다. 어느 날은 날아다니는 벌레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나 패닉에 휩싸여있었다. 그래서 방문만을 열고 어떻게 해야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다 맞은편 방에 살고 있던 친구가 부산스러운 소리에 나와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 친구는 영웅처럼 휴지 몇 장으로 그 벌레는 들어 방 밖으로 나가주었다. 방 안에 있던 간식을 그 친구에게 사례하는 것을 한 밤 중 벌레 사건을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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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실일 때는 다행히도 다른 두 친구가 벌레를 잡을 줄 알아서 나와 그 언니는 방에 숨어서 벌레를 처리해줄 때까지 기다렸었다.


“됐어! 나와!”


이러한 모습을 아는 친구들이라 벌레가 등장하면


“방에 들어가 있어!”


라고 외쳐준다. 그럼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 친구들은 작은 쓰레받기와 신문지를 돌돌 만 무기(?)를 들고 처리에 나선다. 문 뒤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그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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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누군가 해결해주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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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가온 시험기간은 모두들 예민하고 피곤한 시기였다. 4인실은 하나의 거실과 두 개의 방이 있는 구조로 한 방에 두 개의 침대에 놓여있고, 거실에 책상 네 개와 ㄱ자 소파가 있었다. 벌레 특공대 역할을 맡고 있던 두 친구들은 기숙사 내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고 나와 방을 같이 쓰는 그 언니는 오전 시험을 마치고 잠을 자고 있었다. 나만 홀로 거실 소파에 앉아 시험 범위까지 정리해둔 프린트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시야에 검은 무언가가 들어왔다. 내 손에 들고 보고 있던 흰색 프린트 옆으로 뭔가 꼬물거리는 검은색 물체에 소름이 잔뜩 돋았다. 내 발과 약 5센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 벌레는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고 있었다. 소리를 치고 싶었으나 자고 있는 언니 탓에 조용히 소리를 삼켰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기숙사 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두 친구를 부를 수도 없었다. 그럼 내가 들고 있는 프린트로 들어서 밖으로 옮길까? 프린트에서 안 떨어지면 어떡하나? 살충제는 기숙사 1층 안내 센터에 있는데 그걸 가져왔을 때까지 이 벌레가 이곳에 있어줄까, 각종 고민들이 가득했다.


일단 달리기 시작했다.


올라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5층에서 1층까지 빠르게 내려갔다. 헉헉 대며 안내 센터로 들어갔으니 담당하고 있던 사생회 학생은 당황할 따름이었다.


“살충제 있나요?”

“네. 여기... 벌레 나왔나요?”

“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을지 모른다. 기숙사 방에 있다 나왔으니 어느 때보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머리는 산발로 묶어놓은 상태였다.


“요즘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 담당 사생회 학생도 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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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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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기를 장착하고 달려 올라와보니 벌레는 소파 밑 틈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내 손에는 교내 신문지도 있었으니 아주 완벽했다. 살충제를 미친 듯이 뿌리기 시작했다. 벌레가 살충제를 맞으면서도 계속 꿈틀대니 나로서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벌레를 마주 보고 한참을 뿌렸을까, 벌레는 수명을 다한 모습이었다. 신문지 끝으로 슬슬 벌레를 들어 그 신문지까지 버리고 다시 돌아와 휴지로 바닥을 닦고 살충제가 좋을 것이 없으니 그 주변까지 물티슈로 닦고 나서야 한 바탕 벌레 소동이 끝났다.


긴장이 다 풀리자 확 피곤이 몰려왔다. 누가 보면 벌레를 한 100마리는 잡은 모습일 것이다.


누군가는 벌레 하나에 왜 그렇게 반응하냐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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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이라면 함부로 그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을 판단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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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수련회에서 메뚜기를 잡는 체험을 했었다. 난 그날 하루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메뚜기를 잡으라고 아이들을 풀어놓은 그 잔디밭에는 메뚜기가 빼곡했다. 메뚜기가 내 몸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그 잔디밭을 달리고 달렸다. 그 체험이 끝날 때까지 말이다. 울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메뚜기를 풀어주라는 교관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메뚜기를 가져온 같은 방을 쓰는 여자 아이에게 엄청 화를 냈던 일이 기억난다.

벌레를 싫어하는 그것의 시작은 알 수 없지만 꽤 오래전부터 그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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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는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나의 약점을 메우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중학교 때,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잠자리를 기꺼이 잡아오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무서워하는 내가 정말 싫었다.


그렇지만 그런 약점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었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도전이 나에게 필요했다. 그래도 살충제로 벌레를 죽여 보았으니 한 마리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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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약점 하나쯤 가지고 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이겨내기 정말 어려운 것이다. 두려운 것을 마주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약점을 극복할 용기를 못 찾은 모양이다.


p.s. 어쩌면 그들의 세상에선 내가 두려운 존재일 텐데 말이다.


+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 중에서

법정에서 꿀의 소유권을 이야기하는 장면 중 벌꿀 회사의 마스코트인 귀여운 곰을 보며
주인공 ‘베리’가 하는 말,

“이 곰이 귀엽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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