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것
‘안녕
쉽지 않죠 바쁘죠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죠’
철컥,
문이 열리고 어두운 방 안에 복도의 불빛이 가득히 들어왔다. 그러자 놀란 세 친구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하나의 침대에서 말이다.
현관에 서 있던 나의 룸메이트는 눈이 토끼 눈이 되어 있었다.
‘바라는 게
더럽게 많죠’
노래가 툭 끊겼다.
“언니! 왜 연락도 없이 왔어?”
“네 친구들 보고 싶어서 그냥 왔지.”
어색한 표정의 내 친구들은 내 침대 위에 어색하게 나의 룸메 언니를 보았다. 언니는 방의 불을 켜고 물었다.
“근데 왜 불은 끄고 있었어?”
“그냥 할 거 없어서 쉬고 있었지.”
우리가 내려가려 하자 언니는 말렸다.
“됐어. 나 바로 나가야 해. 잘 놀다가요.”
언니는 웃으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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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기숙사동 사생들은 다른 기숙사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사생 카드와 이름, 들어간 시간을 적어서 내야 서로 왕래가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같은 기숙사동이라면 그런 허락은 필요하지 않았고 룸메이트들의 허락이 암묵적으로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니 기숙사에 살면서 많은 친구들의 침대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같은 과 동기들과 룸메이트를 한 것이 기숙사에서 마지막 학기뿐이었기에 그 전 학기 내내 내 친구들이 우리 방에 들어오는 경우보다 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1학년 때는 우리 룸메이트들이 워낙 바빠서 내 방에 놀러 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친구들의 침대를 보면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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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경우는 이불과 자신의 옷이 엉겨있는 경우다.
상당히 많은 친구들이 이러한 침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도 완벽하게 깔끔한 편은 아니었지만 들어갈 때, 어디에 앉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한다. 이 경우의 친구 중 한 명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어디서 봤는데 자고 일어나서 이불을 호텔처럼 펴 놓으면 안 좋대.”
“왜?”
“자는 동안 땀이나 노폐물들이 이불에 흡수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흩어놔야 그것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주는 거지. 괜히 그걸 호텔처럼 덮어두면 못 빠져나간다는 거야.”
“...”
“내 몸이 스스로 그 사실을 인지하고 그렇게 한 거지.”
“... 음... 그냥 네 몸이 귀찮았던 것 같은데...”
“어쨌든! 다 좋으라고 저렇게 두고 나가는 거야.”
두 번째 경우는 침대를 완벽하게 깔끔하게 관리하는 경우다.
그 방에 가면 먼지 제거가 가능한 돌돌이가 벽에 걸려있으며 이불은 깔끔하게 펴져 호텔처럼 세팅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 방에 갈 때면 조금은 경건해진 자세로 들어가는 편이다. 그러한 경우는 침대를 떠나 방의 모든 곳이 완벽하다.
“언니 여기 진짜 깨끗하다.”
“아냐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아.”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데?”
“그거야 볼 때마다 저 돌돌이로 치우니까... ”
언니는 그것이 신기하다는 것을 알았을까?
세 번째 경우는 적당한 침대인 경우다.
이불을 접고 갈 때도 있지만 늦게 일어났을 때는 신경 쓰지 않고 침대를 나서는 바로 나 같은 경우다. 머리카락도 며칠에 한 번씩 치우는 가장 평범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숙사에 처음 살게 됐을 때는 상당히 깔끔한 편이었는데 점차 나의 본능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4인실을 살게 되니 넓어진 면적 탓에 더 귀찮아진 청소를 점점 4명이서 미루게 됐었는데 갑자기 점호를 하러 오셨던 생활관 선생님께서 안쓰러운 눈빛으로 우리의 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시고는 큰 택배 상자에 가득 담긴 쓰레기들을(냄새가 나는 쓰레기들은 없었다!) 보며 말씀하셨다.
“청소... 해야겠네요. 쓰레기도 분리수거해서 버리고..”
“네..”
네 명의 룸메이트들은 모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던 것 같다. 선생님이 나가신 후 네 명의 룸메이트들은 서로 민망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 쓰레기통은 그 일이 있고 일주일 후에 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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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 살게 되면서 아이들의 방을 더 쉽게 볼 수 있었다. 기숙사 방에 모여 보드게임을 하고 같이 시험공부도 하고 야식을 시켜먹기도 하고 서로 공유할 공간이 생긴 것이다.
밖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모습들을 말이다.
친구의 침대에 올라가는 것은 그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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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아이들을 만나면 대학교 친구들과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고등학교 때는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서로를 알아갔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그럴 때면 기숙사 생활의 장점을 느낀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이 아니라 그 이상을 그 친구들과 붙어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실 기숙사 생활이 집보다 마냥 편하지는 않다. 스스로 해야 할 것이 늘어나고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서로의 생활패턴을 맞춰야 하고 그러니 변화해야 점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 사람, 나를 만나는 곳에서 기숙사에서 살아보는 것은 나름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자취를 하는 경우도 기숙사의 경우와 같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기숙사의 경우, 나름의 규율이 있으니 조금은 다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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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1학기, 내 방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사실 초대했다기보다 때마침 우리 방이 비어있었다. 이에 룸메이트들에게 연락을 하고 친구들을 방에 들였다. 내가 그들에게 허락할 수 있는 공간은 바로 나의 좁은 침대였다. (그 당시는 3인실에 살았었다. 그곳은 한 방에 세 개의 이 층 침대, 그 밑에 개인용 책상이 놓여있는 구조로 바닥의 넓이는 성인 여자 3명에서 5명이 앉을 수 있는 정도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숙사에서 지낸 곳은 4인용 특실이었다. 그래서 넓은 거실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좁은 침대에 세 명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한참 그러다 지친 나머지 불을 끄고 노래를 스피커로 틀고 잠시 누워있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좁은 나의 침대에 간신히 눕자 웃음이 났다. 어느새 어두운 방 안에 노래만 울려 퍼졌다. 셋 모두 자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대로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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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의 둘째 언니는 나에게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진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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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침대를 내어준다는 것, 나에 대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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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일종의 작은 사회생활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선배와 후배라는 수직관계와 동기라는 수평관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겪지 않았던 관계들과 그전까지는 겪어본 적 없는 캐릭터의 사람들을 마주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좋은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나를 응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위로를 해줄 초콜릿같이 말이다.
+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피곤해도 아침 점심밥 좀 챙겨 먹어요
그러면 이따 내가 칭찬해줄게요
Zion.T의 노래 <꺼내먹어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