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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Oct 13. 2020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 신인 시나리오 작가 집필 일기, 아홉 번째 질문 -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보는 것”     
노트북 가방의 무게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버거웠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나리오는 처음으로 쓴 장편 영화 시나리오였다. 주위에 글 쓰는 친구가 많지 않고, 스터디나 아카데미에 다닌 적도 없기에 계약 이후 시나리오 작업에서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다. 원래도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부끄러워하는 편이다 보니 더욱 그랬다. (‘경희’ 시나리오가 특별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던 글이었다.) 시나리오 작업 방식도 전혀 달라져야 했다. 기획안 단계가 통과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고, 이전에는 그저 머릿속에서 그리기만 했던 스케치, 트리트먼트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야 했다. 좀 더 체계적인 방법이지만 개인적으로 완성에 대한 갈망이 더 늘어가던 시기였다.


계약 이전의 스토리 작업 구성은 단순했다. 시나리오든, 소설이든, 드라마 극본이든, 아이템이 떠오르면 간단한 얼개만 구성하고 일단 썼다. 쓰면서 갈등을 만들었고, 쓰다 보면 복선으로 하면 좋겠다는 장치에 앞뒤를 맞췄다. 즉흥적이긴 했지만 스스로에게는 꽤나 잘 맞는 방식이기도 했다. 완성된 몸체를 보고 수정될 부분을 찾아 수정하는 것이 편했다. 더불어 차마 기획안 안에 담지 못한 매력들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더 넓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재는 확정되었으나, 기획안 수준에서 계속 보류가 되는 그 시점에서 그 체계적인 작업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배경으로 계속 짜 맞춰가는 기획안은 시점이 바뀌거나, 역사적 사건의 일부만 다루거나, 또 다른 역사적 인물을 가져와 투톱 영화로 하거나, 여러 가지 기획안들 사이에서 미친 듯이 새로운 구성을 짰다. 연륜이 부족했던 것이겠지만, 그 시행착오는 조금 지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더욱 혼자 글을 쓰는 일이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더 이야기를 했다면, 계약 이전에 더 시나리오 공부를 했었다면 더 해결책을 빠르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시간이었다.

(이 매거진을 쓰게 된 이유와도 같다. 글 쓰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했다.)

계속된 미팅은 정말 끝없는 길이었다. 정답을 알고 싶은 답답함이 차올랐다.

물론 PD님과의 미팅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그 미팅으로는 계속된 영화 기획안과 구성의 늪에서 혼자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그때, PD님은 내게 소재와 장르가 비슷한,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영화 15편을 소개해주셨다. 리스트업 된 15편 영화들을 짧은 시간 동안 몰아보며, 약점은 무엇인지, 강점은 무엇인지, 어떤 구성이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지를 정리했다. 초고를 완성했던 시나리오의 구성을 확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그 15편의 영화들이었다.


15편의 영화들은 완성된 몸체들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장점과 단점을 찾아내며 어떠한 구성이 더욱 매력적으로 소재를 살릴 수 있을지를 찾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구성에 대한 고민을 마치고, 트리트먼트 작업 이전에 타임 테이블을 짰고, 사건별로 의미를 붙였다. 왜 이 사건이 이 실존 인물을 위해 필요한 사건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근거들을 메꾸었고, 그 엑셀 표를 지나 트리트먼트를 완성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이 과정에서 배운 점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쓰기 위해서는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봐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자신이 쓰고자 하는 소재와 장르에 대한 영화는 더 많이, 봤던 영화라도 다시 한번 보면서 분석해봐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여야 가장 잘 해낼 수 있다는 말은 이러한 면에서 정말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해보고, 많이 보고 알아야, 해낼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요즘 운전을 배우고 있다. 모든 길이 초행길이다. 네비게이션 안엔 수많은 길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질문

Q. 여러분들이 추천하시는 좋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요,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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