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색가방 Oct 05. 2020

좋은 기획안이란?

- 신인 시나리오 작가 집필 일기, 여덟 번째 질문 -

“기획안이 선정되었다.”     
경복궁 야간개장에서 만난 추석 보름달, 해낼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앞서 서문에 밝혔듯이, 지난 1년간 작업했던 시나리오는 회사의 컨펌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기획안’에 대해 실질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몇 장을 걸쳐 그 과정에 대해 깊게 담아보려 한다.


처음 계약 이후, 3개월 동안은 영화 기획안 단계에서 ‘소재 찾기’에 머물렀다. 계속 대중들을 후킹(hooking : 갈고리처럼 훅 낚아채다. 시나리오에서 대중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포인트)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았다. 스스로도 좋고, 대중들도 새롭게 여길 만한 수많은 소재들 중에서 결정된 것은 ‘실존 인물을 기반한 기획’이었다. (아무래도 작업했던 아이템은 비밀로 둘게요. 언젠가 제가 다시 작업할지도 모르니까요. ㅎㅎ)   

  

사실, 맨 처음에 던졌던 소재였다. 지난 3개월의 시간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안개가 참 많이 낀 아침이었다.

그동안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준비했다. 나는 콘셉트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 그러나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잘못하는 장르였다. 아니, 처음 써보는 장르였다. 숨조차 돈으로 구매해야 하는 세상, 근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로... 하지만 첫 미팅에서 바로 들통났다.

 

PD님은 “작가님, 이 작품에 확신이 있어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고민 중이에요.”라고 답했다. 그렇다. 나 역시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PD님은 내게 “예전에 생각했던 그 기획안은 어때요? 저는 작가님이 그 작품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작가님이 그런 부분을 잘 쓸 것 같아서 작가님과 계약을 진행한 거고요.”라고 말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내 삶이 한 권의 책과 같아서 미래의 챕터를 미리 넘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부담이 되는 소재였다. 실존 인물을 다룬다는 것, 그 시작이 두려웠고,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고, 또 내가 많이 알아본 소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시작이 두려웠던 것은 내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존했던 인물의 삶 이야기를 펼친다는 건 꽤 무서운 일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인물을 수면 위로 올렸을 때의 반응, 과연 존중하여 그 인물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지, 왜곡하지 않고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글을 쓰기 전, 고민이 앞섰다. 예전에 그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 기획을 포기하고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그게 신춘문예 당선작 ‘경희’다. 내가 담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에둘러 그 인물을 담고 싶었다. 그만큼 그 인물은 내가 선뜻 다루기에 참 복잡하고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 인물의 이야기를 잘 다룰 수 있을지 두려우면서도, 내가 잘할 것 같다는 말에 자신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된 기획안의 시작에 있던 나는 참으로 확신이 없었다. 그 인물을 잘 그려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수없이 이어진 수정의 시작이었다. 한 인물을 가지고 어떻게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나 자신을 시험해볼 수 있었다. 한 인물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하고 배열하고, 엮여있는 역사적 인물들과, 논문에서의 평가, 숨겨진 일화 등을 펼쳐놓고 퍼즐처럼 조합했다. 어떻게 하면 단순한 전기영화가 되지 않고 신선한 전기영화가 될 수 있을까하며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렇게 좋은 기획, 신선한 구성을 위해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이 작품에 진심으로 확신이 있냐고.     

.

.

.     


Take your time. Everything is be alright.

신춘문예 당선금으로 노트북을 하나 장만했다. 좋은 걸로, 최신형 중에서도 최신형으로. 그전에 내가 쓰던 노트북에 키보드에 가장 많이 지워진 자음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ㄴ'이다.

나는 'ㄴ'이라는 자음을 꽤나 사랑하는 모양이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ㄴ'은 쓸모가 많다.

'ㅏㅡ'

'ㅏ에게'

'ㅐ가'

'ㄴ'은 주어의 자리에 올라 그 문장을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조사로서도, 그리고 문장의 의미를 바꿀 때도,     

이번 키보드에서 나는 'ㄴ'을 지켜내고 싶다. 수많은 부딪침 속에 빈자리만 남아있지 않기를.   

  

(그 당시 썼던 나의 일기 중에서)

.

.

.   


오늘의 질문

Q. 자신의 이야기에 확신이 없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A. 우선 저의 답) 무슨 일이든 계획을 세워야 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저지만, 글을 쓸 때는 조금 다릅니다. 일단 쓰면서 빈틈을 찾고 채워나갑니다. 저는 글을 써봐야만, 완성해봐야만 그 이야기 속 빈틈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확신을 갖기 위해선 일단 쓰기 시작합니다. 다 써보고도 작품 자체에 확신이 생기지 않아 글 썼던 시간을 버렸다고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이 소재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으니까요.

이전 08화 내가 좋아하는 것과 두려워 하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