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색가방 Oct 21. 2020

매력적인 이야기를 위하여

- 신인 시나리오 작가 집필 일기, 열한 번째 질문 -

“이 이야기의 매력을 못 느끼겠어요.”     


작년, PD님의 말에 머뭇거렸던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 소재와 기획안이 완성되고, 열심히 트리트먼트를 쓰던 시기였다. 트리트먼트를 쓰면서 부족했던 자료조사를 추가로 했고, 책과 논문들에 빠져 지냈다. 50페이지, 4만 자가 넘는 롱 트리트먼트를 읽어본 PD님은 ‘매력을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머릿속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던 것 같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그 말이 속상하면서 그러면 어떤 것이 매력적인 것일까를 고민했다.


“정말 매력적인 이야기는 무엇일까.”


작가를 꿈꾸고 있거나, 작가 거나, 어떠한 작품을 기획하거나 어쨌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매력’이다. 어떤 이야기가 매력적일까. 우리는 무엇을 제시해야 할까. 관객들이 돈을 주고 영화관에 앉을 수 있게 하는 상업영화라는 조건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매력이 없다는 것은 엄청난 실수다. 극적인 사건들을 선보여주며 인물의 움직임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좋은 영화를 넘어서, 좋은 상업영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매력 있게 할까.



노을이 질 때, 아주 잠깐 하늘이 보랏빛으로 변합니다. 저는 그 찰나를 아주 좋아합니다.

초점을 맞춰야 했다.


내가 맞춘 초점은 수많은 제작비가 들 이야기로는 부족했다. 다이내믹한 실존인물의 매력을 높이는 사건들을 어떻게 배치할지,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찾아야 했다. 만들어둔 이야기 구조는 개인적으로 내 마음에 드는 구조였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내가 유혹해야 하는 상태는 300만 관객이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나의 이야기 구조는 이랬다.


‘조선 최초 전람회를 준비하는 이야기’     


이러한 전람회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그 전람회에서 그 개인의 성취를 봤고, 그 개인의 성취로 한 인물의 성공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 그 인물이 가지는 여러 가지 정체성 중 나는 하나에 갇혀버렸다. 조선 최초의 전람회는 과연 매력이 있는 한 문장일까?


PD님은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예시를 들어 보여주셨다.(앞서 언급했던 15편의 영화 리스트 중 한 편이었다.)


‘돈도 빽도 없는 이혼녀가 거대기업의 환경오염 문제를 발견하고,
거대기업과의 소송 전쟁을 시작하는 이야기.’


한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문제를 어떻게 고발하는지,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인 문제가 딱 붙어서 성장 곡선을 제대로 보여주는 구성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나치게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초점이 현재에도 왜 필요한가가 이 이야기의 매력을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한 인물의 성취를 보여주면서, 이를 한 개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시스템과 어떻게 결부되는지 확인시켜야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사회 자체의 시스템을 부수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왜 그 인물을 이 시대에 불러와야 하는지, 그 사건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이야기의 매력적인 요소다. 이미 과거가 된 실존 인물을 그리면서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건, 그 인물의 존재 이유다. 그 인물이 왜 현실에 존재해야 하며, 그 인물이 가진 성취가 이후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말이다. 이는 실존 인물의 모티프를 떠나, 캐릭터의 매력을 찾는 맨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어느 캐릭터든, 그 캐릭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나는 매력을 되찾기 위해 그 인물의 존재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여행에 가면 늘 일몰과 일출을 챙겨봅니다. 매일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놓치는 순간들을 여행 중에는 꼭 챙기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이야기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설득해야 했다. 그 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나는 아예 새로운 프로젝트를 짜기 시작했다. 고루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려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삶이 있다는 그 존재감을 말하는 것, 그리고 그 우려와 걱정을 뒤집을 만한 선택, 그런 선택을 내가 찾기 위해서, 내게 미련이 남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과정은 분명 미래의 내게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 믿는다. 그렇게 찾아 헤맨 매력을 회사에게 설득하기는 실패했지만, 트리트먼트 단계 다음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또 수정의 늪에 빠져버렸다.

.

.

.

이 기회가 얼마나 내게 소중한 것이었는지,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신인인 내가 보여주는 것이 잠재력이 아니라 실력이기를.
(당시 일기 중에서)     

.

.

.


오늘의 질문

Q. 오늘 쓰신 글의 매력 포인트는?

   

이전 11화 실존 인물에 대한 예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