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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Oct 23. 2020

골목식당 백 선생님

- 신인 시나리오 작가 집필 일기, 열두 번째 질문 -

나는 작가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공모전에 도전했고 떨어졌다. 그렇게 한 100개쯤 떨어지면 하나가 붙었다. 그렇게 띄엄띄엄 내 노력을 '인정'받는 기회가 날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참 얄궂다. 100개 중 하나, 그러니 내 가능성은 1%인 셈이다.


이렇게 포기하지도 못하게 감질나게 주는 성취들로 지금껏 글을 써왔고, 엄청 큰 성취가 나에게 들어왔다. 이름만 들어도 거대한 신춘문예... 그 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떠한 부담이 없이 즐거웠다.


그 이후, 나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와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집필 일기를 쓰고 있다. 몇 개월 전, PD님을 만나는 미팅 날이면 나는 참 부끄러워졌다.


내가 준비했던 것들이 흥미롭지 않다는 말,

생각보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들을 안 보는 것 같다는 말,

글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냐는 그 말,

확신 없는 문장에 살만 붙이는 느낌이라는 말,

날 관통하고 있다는 그 눈빛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아마도 그 말들이 스스로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1%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올해 새로 배운 건 운전이다. 5년 장롱면허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작점에 섰다.

내 그릇에 맞지 않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날이 늘었다. 헛된 공상을 하는 일이 늘었고, 작품에 대한 고민은 줄었다. 거품이 내 주위에 달라붙고 있었다. 붕 뜬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내게 이 계약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을 했다.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질문을 할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버거운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른 선택지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해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최근에 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화에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명문대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바이올린을 너무 사랑해서 4수를 하면서까지 바이올린 전공으로 음대에 입학한 주인공 ‘채송아’의 대사다. (어쩌다 보니 인물 소개가 구구절절이 되었다. ㅎㅎ)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화 중에서. 이번주에 종영했고, 대본집도 구매했다
“언니 바이올린 잘해요?”
“... 좋아해, 아주 많이.”


그 대사 때문에 그 드라마를 계속 보게 됐다. 잘한다는 물음에 잘한다는 확신 가득한 답을 할 수 없이 좋아한다고만 말하는 모습이 공감됐기 때문이다. 좋아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알 것 같아서 말이다.



우리 PD님을 보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골목식당에서의 백종원 님이다. 골목식당 백 선생님은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가게들만의 경쟁력을 키울 기회를 주시는 분이다. 그분의 코칭은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보통 이어지는데, 이 모습에서 PD님의 모습을 겹쳐봤다. 나의 대본 속에서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직접 올 만한 경쟁력을 찾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그 도움으로 난 늘 놓치고 있던 것들을 깨닫는다.


언젠가 시나리오 미팅을 한 바로 그날 수요일 밤, 골목식당에 출연한 떡볶이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도 따라 눈물을 흘렸다.


그 떡볶이 가게 아주머니는 23년 동안 해온 자신의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백종원 님을 통해 알게 되셨다. 아주머니는 더 맛있는 떡볶이를 위해 직접 만든 수제 고추장을 사용하셨는데, 그 과정은 다른 떡볶이 가게들보다도 훨씬 고된 과정이었다. 그렇게 23년이 흐르는 동안, 아무도 아주머니께 또 다른 방법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백종원 님의 코칭 이후, 바뀐 레시피로 떡볶이를 판매하는 날, 아주머니의 오랜 목표였던 떡볶이 한 판을 모두 판매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날 판매가 종료된 후, 23년 동안의 기간이 허망해서, 또 자신의 목표인 떡볶이 한 판 판매에 기뻐서 눈물을 흘리셨다.


미팅하고 나서 머리가 복잡해진 저녁이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머리에 가득 찼다. 그 사연을 보며 아주머니를 따라 울었지만, 울면서 나 자신을 떠올렸다. 아직 20대에, PD님을 만나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나만의 방법에 갇힌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이 줄었다고 안도하면서 말이다.


한동안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불안감이자 부담감을 그날 골목식당 에피소드를 보며 조금은 털어냈다. 좋아하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 같아서 말이다.


PD님은 계약 초기에 미팅이 끝난 후, 내게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하시며 말씀하셨다.


“자꾸 뒤돌아보면 안 돼요.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가 올 때,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 기회를 놓치기도 하거든요.”   
  

그때 나의 대답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볼게요.”     



오늘의 질문

Q. 한없이 스스로 의심하게 될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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