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술이 원수지...

지금 아니면 언제

by 분홍색가방

#3 술이 원수지...


“미안해! 진짜 미안해!”


낑낑거리며 이층 침대 위로 술에 잔뜩 취한 룸메이트를 밀어 올리고 있는 중이다. 술에 취한 룸메이트는 계속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 중이고 말이다. 밑에 있는 나와 또 다른 룸메이트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간신히 그 가파른 계단 위로 올려 눕혔다. 이불까지 덮어주고 내려와 다른 룸메이트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의미의 눈빛을 교환했다.


그런데 갑자기 벌떡 하고 일어나서는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는 술 취한 룸메이트를 보고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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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어색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친해지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아닌 이상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하면서 친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에서 ‘술’을 빼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참 이상한 모습을 많이 본 것도 내가 술을 조심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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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라는 것은 참 많은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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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오니 신입생들에게는 수많은 술자리들이 있었다. 그 때는 분위기를 깨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꽤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심장이 빨리 뛰는 신호를 느껴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그것은 바로 취했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가 오면 스스로 그 술자리를 끝냈던 것 같다.


술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면, 주로 난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남아있는 편이어서 아이들을 캐리(?)하는 편이었으니 몇몇 이야기들이 있다.


개강 총회 날, 친구가 얼굴을 빨개진 채 멍한 표정으로 있기에 괜찮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토할 것 같으니까 사라져’였다.(그 당시 표현에 비해 순화한 표현이다.) 그날 그 친구와 입학 처음으로 대화한 내용이니 당시의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날은 두 개의 약속이 겹쳐버린 날이었다.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1차 약속, 자정부터 2차 약속. 1차 약속을 한 친구들과는 한 잔의 술이 다였는데, 2차 술자리가 문제였다. 새벽 6시까지 장소를 4곳이나 옮겨가며 마셨으니 말이다. 마지막은 교내 노천극장이었는데 무대에 올라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귀여웠다. 지금까지 영상을 찍어 괴롭히고 있으니 만족스러운 술자리였던 것이 분명하다.


어느 날은 취해 들어온 룸메이트에게 술을 깨라고 얼음을 하나씩 먹여주기도 했다. 주스를 바닥에 쏟기도 하고 우유를 쏟기도 하고 어떤 때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아직도 녹음본이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기록을 해두는 것이 좋다.)


어떤 친구는 술을 마시면 전화를 하는 술버릇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 혀가 꼬인 소리로 자기가 어딘지 맞춰보라기에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아 화장실이냐고 답하니 너 뭐냐고 왜 맞추냐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이 친구는 자취방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다가 벽에 구멍을 뚫는다던가, 자신의 책상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던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들은 실시간으로 보았던 것에 감사하다. 언제 그런 모습들을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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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고나니 재밌는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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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몸에는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따금 친구들과의 간단하고 건전한 술자리는 인상 깊은 추억들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20대 초반 친구들과의 기억들은 지금 아니면 언제 미뤄두고 할 수 없는 일이니, 놀아도 좋다.

지금 이 순간, 건전한 즐거움에 취하길.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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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라

샤를 보들레르


항상 취하라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면서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


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술로 , 시로 , 사랑으로, 구름으로, 덕으로

네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든 좋다.

다만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물 위에서나

당신만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이미 취기가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줄 것이다.


취하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항상 취해 있으라.

술이건, 시건, 미덕이건 당신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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