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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Jun 29. 2019

누군가를 나보다 더 오래 생각한다는 것에 관한 책들.

흔히 '사랑'으로 불리는 것에 관한 책들.

동네책방 <관객의 취향>

꾸물거리는 장마의 초입, 집 밖을 쉽게 나가기 싫은 요즘 취재를 위해 동네책방으로 떠나왔다.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기획 취재를 하기 위해 온 곳이지만 미뤄둔 글을 쓰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분명 이번 여름이 시작되기 전, 여러 이야기를 매거진을 통해 전하고 싶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라는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을 떠올린다. 인터뷰를 요청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책방에 온 만큼, 책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도 미루면 7월에야 이 매거진을 이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돌아온 책 추천 리스트다. 책들은 소개할 때 나름의 기준을 잡기 위해 애쓰는 편인데, 이번 기준은 '누군가를 나보다 더 오래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책, 그러니까 흔히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고 싶어 졌다. 글을 쓴다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많이 읽지 못해, 더욱 독서의 범위가 좁아진 느낌이지만 과거 내게 어떠한 느낌을 줬던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제 진짜 책 많이 읽어야지...)


이번에 골라온 책들은 세 가지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골라봤다. 엄마와 아들, 사람과 사람, 연인, 이렇게 세 분야로 나눴다. 나 역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사랑의 대상이며, 또 주체이며, 그러한 마음은 누구나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나 자신보다 더 오래 누군가를 생각하는 그 시간들은 다정한 시간일 테니까. (유의사항, 그 상대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책들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다정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1. 아몬드 / 손원평


"나는 부딪혀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책 '아몬드'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병, '감정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소년의 성장 이야기다. 어떠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까닭은 태어날 때부터 소년의 뇌 일부분, 흔히 아몬드라고 불리는 '편도체'에 문제가 생기면 발현되는 질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소년 '윤재'는 '엄마의 사랑'으로 성장한다. 본 책에서 윤재의 엄마가 실제로 존재하는 시간을 짧다. 하지만 과거부터 윤재와 함께 있을 때까지 시간 동안 엄마가 윤재에게 준 사랑으로 윤재는 '사랑'을 알고, 또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감정표현 불능증을 다루며 본 책은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인한 가능성에 대해 표현한다. 절대 동시에 이뤄질 수 없을 것 같던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다. 해리포터가 볼드모트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엄마의 사랑이었던 것처럼. 윤재의 삶에도 엄마의 사랑은 윤재가 성장할 수 있게 한다. 엄마는 간절히 믿고 바란다. 윤재가 감정을 느끼길, 엄마가 자기 자신보다 더 오래 윤재를 생각한 시간만큼 윤재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었고, 끝내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이리라.


(책 속에서)

1.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2. - 엄마도 주름이 있네

    - 이제 엄마에겐 남은 건 늙는 일밖에 없단다.


3.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


4. -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가 내 손을 조물 거리며 덧붙였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어딘지 식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날이 있는 거다.


5.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6. - 사랑!

    -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 예쁨의 발견.


7. - 너 지금 왜 심박수가 높아진 건지 알아?

    - 아니.

    - 내가 너한테 가까이 다가가니까 심장이 기뻐서 손뼉 치는 거야.


8.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2. 경애의 마음 / 김금희


"요즘 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주체인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


서평단을 통해서 가제본으로 본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단편집인 <너무 한낮의 연애>의 작가님이어서 찾아 읽게 됐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책 <경애(敬愛)의 마음>은 친구의 죽음, 회사에서의 인정받지 못하는 생활, 노조 파업, 익명의 페이스북에서 일어나는 일들 등, 사회 전반적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순간들을 담고 있다. 그 순간을 이겨내고 더욱 단단해진 마음으로, 또는 유연해진 마음으로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한 밤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들이 느꼈다.


상수와 경애, 그리고 수많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보며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그들을 떠올렸다. 모두의 상처에 크기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와 불행을 견줄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상처는 모두 마음속에 존재하고, 그 마음을 가지고 그들은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를 경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상수가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며 사랑에 아픈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던 것처럼, 경애가 은총에게 먼저 눈을 보낸다고 말했던 것처럼. 요즘은 지치고 바쁘고 힘든 생활이 가득하니까, 당연하게도 내 옆의 누군가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의 마음을 서로 지켜줄 수 있길. 모두들 경애(敬愛)하는 마음으로. 내 옆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길. 사람을 서로 사랑하여, 그 주체인 나를 사랑하길.

(책 속에서)

1. 상상할 '여지'를 주지 않으니까. 여지는 삶에 있어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이 없는 삶은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p.6)

2. 그렇게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그것이 사라지는 과정에는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p.32)

3.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p.57)

4. "나는 그 영상을 솔직하게 찍었어." / "거기에는 내 마음이 다 담겨 있어."(p.65)

5. 우리는 끝장난 연애를 미화하기 위해서 기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하루에 한 번은 거울을 꼭 보도록 하세요.(p.93)

6. 경애의 엄마는 언제나 경애가 일어서는 아이라고 믿었고 꽃처럼 예쁘게 보내야 할 경애의 시간들이 오래되어 퀴퀴한 빨래처럼 방치된 채 흐르고 있어도 슬프거나 경애에게 뭐라고 한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p.98)

7. 안녕, 오늘도 무사한 아침이야. 무사하다는 것은 무한과 무수 사이에서 간신히 건져 올려진 낱말 같아. 막막한 바다를 떠다니는 작은 보트처럼.

8. 살면서 조금씩 안 부서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무 사건 없이 산뜻하게 쿨하게 살자 싶지만 안되잖아요. 망하는 줄 알면서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부서지고. 상대를 괴물로 만들고 뒤집어씌워봤자 뭐해요?(p.150)

9. 언니, 폐기 안 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은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p.172)

10. 요즘 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주체인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합니다.(p.311)


3.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이도우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2000년 초반 연재된 소설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짙다. 사실 본 소설이 연재될 당시 나는 아마 8살이었다. 현대에서 그 아날로그 감성을 읽으며 공감하는 이유는 하나이지 않을까.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일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나도 나보다 더 오래 떠올리고 깊게 생각할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라는 말이 맴돌아 본 책을 읽었고, 그 문장을 곱씹으며 책을 마쳤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매일 그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마음일 것이다.


(책 속에서)

1. "… 하지만 확실한 건 바람같이 굴어서 외롭게 만들진 않을 거예요. 난 내 여자는, 줄기차게 손 붙잡고 다닐 거니까. 안고 다니고." - 162p

2. 넌 늘 춘향 같은 마음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 218p

3. 우리는 안 될 것 같다.
    네 번은 하지 말자
     - 세 번 시작하고 세 번 끝난 날 - 235p

4.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게 사랑이 아니면 또 뭐란 말이야." - 249p

5. 당신은 밤마다 그 사람의 머리맡을 지키고 싶은 건가요. 진솔은 소리 없이 물었다.
    당신 손끝에 봉숭아 물 흔적은 이미 지워졌는데, 당신은 내년 여름에도 또 물들일 건가요. - 266p

6. 언제나 모자란 점이 많게 느껴지던 그녀 자신 또한 더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11월, 그 어느 멋진 날에.   -  274p

7. 매화꽃 아래서 입 맞추겠네.
    당신이 수줍어해도. 내가 부끄러워도. - 441p




누군가를 나보다 더 오래 생각한다는 마음,
그 마음은 언제나 따뜻할 테고,
그 누군가를 성장하게 만들며,
그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질 것이고,
그 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by. 필자의 말


책들을 읽으시면서 다정한 시간을 보내실 있길 바라며 추천글 닫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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