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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연 Dec 27. 2022

사별에 먹는 약 있나요?

정신과에 갔던 이야기

아이를 떠나보내고 상담센터 몇 곳엘 가보았다.

평소 상담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필요하다면 받아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상담센터 두 곳 모두 나를 실망시켰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듯 느껴졌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기다려 보았지만 아이를 보내고 6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에도 마음은 여전히 힘들었다.


멘탈 하나는 정말 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40년인데, 가끔은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고 어떤 날은 낮은 동산에만 올라도 떨어질 듯 눈앞이 하얘지며 식은땀이 쏟아졌다.

좋다는 것은 이미 다 해보았지.

운동도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고 강아지도 키우며 취미생활로 꽃꽂이를 했다.

우울할 때는 밖으로 나가라기에 일부러 사람이 많은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기를 1주일 정도 했을 즈음.

핫하다는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받아 들었는데 울컥울컥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급하게 마시던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서 집으로 오는 길.

지나가는 엠뷸런스 소리가 귀를 통해 뇌로 침투하더니 뇌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아이 상황이 긴급할 때마다 탔던 엠뷸런스 소리는 그저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 사이사이로 그때의 기억이 가시처럼 콕콕 박혀 함께 돌았다.


급히 집에 들어왔지만 가빠 오르는 숨을 참을 수 없었다.

이러다가 미치겠구나 싶어 바로 돌아 나와 눈에 보이는 아무 정신과에 들어갔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나에게 간호사는 무심히 문진표를 내밀었고 문진표 작성을 하는 동안 눈물은 끊임없이 흘렀다.

문진표에 슬픈 글이 쓰여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또다시 지나가는 엠뷸런스 소리가 내 뇌 안을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작성한 문진표를 전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의사에게 간략하게 사별했다는 이야기와 요즘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진이니까 꽤 긴 상담이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의사는 두어 마디 더 묻더니 "그래서... 약을 드리면 되나요?" 하는 게 아닌가...

약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필요하다면 먹을 생각이었지만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 볼 생각도 안 하고 나를 만난 지 10분도 안되어 약을 주면 되겠냐고 묻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상담을 받아보고 싶어 몇 마디 더 건네봤지만 의사는 '사별하고 힘든걸 나한테 어쩌라고' 하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줄곳 약을 권할 뿐이었다.

정신과의사는 TV속 오은영박사 같을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였는지 실망도 컸다.


그렇게 1주일치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아직도 그 약을 먹지 않았다.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그랬다.

그렇다고 아무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울었다. 맘껏 울었다.

주말마다 신랑과 술잔을 기울이며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함께 울었다.

그렇게 운 힘으로 다음 1주일을 버텼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고, 우울증에는 항우울제를 먹으면 다소 해결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별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약도 있을까?

나의 결론은... 없다.

일시적으로 증상을 감출 수 있다 해도 결국엔 쌓여있다가 해일처럼 몰려온다.

그저 아플 때마다 눈물로 야곰야곰 꼴깍꼴깍 삼켜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나에게는...


지금이라고 극복이 된 것은 아니다.

특별히 무슨 날이거나 어떤 장소에 가지 않아도 문득문득 슬퍼질 때가 있다.

그때는 별수 없이 슬퍼한다.

대신 그 슬픔이 깊어져 그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슬픔을 다루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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