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보니 10년 동안 데이트할 때마다 나만 돈을 썼네......
이 남자.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에게 가방을 사달라고 한다.
나는 그가 자신의 가방을 살 충분한 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카드값에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당당하게도 가방을 사달라고 한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천만 배쯤 더 사랑하니 이번에도 사줄 수밖에.....
내 돈을 써야 하지만 단둘이 데이트에 마냥 기분이 좋아 얼른 나선다. 그를 모시고(?) 운전해서 가는 동안 신호에 걸릴 때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지만, 그의 시선은 줄곧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기분은 어떤지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물어볼 때마다. 그는 시선을 핸드폰에 고정한 채 '응' '괜찮아' '그저 그래' 등 시크하게 대답할 뿐이다.
10년 전 첫 만남에 완전히 반했었다. 이 남자도 그때는 매일 나와 눈을 맞추며 다정히도 교감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찾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가는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다고 하며 나왔다. 그가 근처 카페를 보며'기분도 안 좋은데 따뜻한 차라도 먹자'라고 말한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차뿐만 아니라 케이크까지 거침없이 주문하고, 계산은 자기가 직접 하고 싶다며 내 카드를 가져간다.
이번에도 내 돈을 쓰지만 단둘이 차를 마시는 것이 얼마만인가. 마냥 행복한 시간이다. 가끔 시간 내서 해주는 데이트, 그마저도 할 때마다 내가 계산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거의 짝사랑에 가까운 관계이니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약자다.
오늘 사지 못한 가방은 다음 주말에 사겠다고 하며 저녁은 초밥을 먹고 싶다고 말하는 이 남자.
정말 너무한다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회전초밥 집으로 향한다.
너와 데이트하려니 참 돈이 많이 드는구나 아들아.
앞으로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