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참 우연히 지인들을 잘 만나는 편이다.
20대 때 첫 해외여행을 갔을 때, 신주쿠역 한복판에서
옆에 과 선배를 우연히 만나 신기해하며 함께 술을 마시는 추억을 만든 적도 있다.
누군가는
내가 목소리가 커서 사람들이 잘 알아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여하튼 내가 생각해도 우연히 잦은 편이다.
병원에 들어서면서
제발 이곳에서 만큼은 아는 사람을 안 만나길 바랐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하필 이곳에서 만난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녀는 나를 알아봤지만
나는 전혀 못 알아보고 그저 대구에서 온 고향 사람이고
나이도 같으니 살갑게 대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구수한 대구 말투로 말했다.
'니.. 00 여고 나왔제?'
나는 몇 초간 급하게 머리를 굴렸다.
동창 같은데 몇 학년때 같은 반이지?
그리고.. 그냥 농담을 툭 던졌다.
'혹시... 내가 니 괴롭혔나? '
'하하하하하하. 니 성격 여전하네.. 내 은정이 친구다'
그녀와 나는 '은정'이라는 친구를 공유하는 동창이었다.
입이 무거운 은정이는
서로 모르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옮기지 않지만
그래도 정보 정도는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런 궁금증은 그녀가 풀어줬다.
아이가 진단받고 지금까지
친구들에게 그냥 아파서 긴 치료가 필요하다고만 말했지
병명 등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그녀의 아이는 우리 아이와 동갑이었는데 초등학교5학년,
그러니까 2023년 진단을 받고 치료 중 재발을 하여 입원했다.
재발이라는 말에 처음 진단받았을 때보다 더 마음이 무너졌다고.....
그녀는 왜 우리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며 특정 대상이 없는 억울함과 분노와 슬픔과 원망을 내뱉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내는 친구를 안아줬다.
25여 년 전 같은 건물에 매일 함께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25년을 함께해 온 친구만큼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