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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Jul 02. 2020

압도당했다는 것은 인식이지 사실이 아니다

《불안과 잘 지내는 법》을 읽고

밭은기침이 나왔다. 내 마음속에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당시는 대구에서 코로나 19 확진 환자가 매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때였다. 나와 우리 집은 대구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더구나 집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는데도 잔기침이 나면 불안했다.


매년 환절기 때면 가벼운 천식 증상이 왔다 가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가 보았다. 섣불리 병원에 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병원도 가지 못하고 상황을 지켜봤다. 밤이면 기침이 나오고 아침에는 괜찮은 날들이 반복되었다. 코로나 확진자 증가세가 안정된 후 병원을 찾아 엑스레이를 찍었다. 천식 증상이며 약을 먹으면 금방 가라앉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했다.


그처럼 내 기침은 나의 건강, 가족의 건강, 나아가 지역 사회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투자 + 위협 = 불안


불안은 자신의 세계에 가해지는 위협이 감지될 때 뇌에서 시작된다. 거기에 투자는 불안한 느낌을 창조한다. 무언가에 마음을 쓰지 않는데 불안이 나타나는 일은 없다.


저자는 투자하지 않는 한 불안은 없다고 했다. 투자했더라도 그 투자가 위협받는다고 인식하지 않으면 불안은 없다고. 무언가 불안하다면 내가 투자한 상황이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이 우리 삶의 특정 측면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불안을 유발한다. 그 상황이 우리에게 중요하고(투자) 그 상황에 위험이 임박했다고 인식한다면 우리는 불안 증세를 겪게 된다.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자주 혼동하여 사용하는데 저자는 그에 대해 구분 짓는다. '불안'은 모호하고 미래와 관련해 심란한 느낌이고 '두려움'은 구체적이고 강렬하며 현재와 관련된 느낌이다. 예를 들면 내가 잔기침을 하며 혹시나 코로나 증상일까 봐 불안해하는 것과 흔들 다리 앞에서 발을 헛디딜까 봐 발을 떼지 못하는 두려움의 차이가 아닐까.



'불안'이란 말의 근본 의미는 '심란하거나 애를 먹는다'는 뜻이다. 불안은 두려움, 걱정, 초조, 공포, 조바심 등의 느낌과 연관된 생리적이고 심리적인(몸과 마음) 상태다. 어느 정도의 불안은 정상적인 삶의 일부지만 그런 상태가 너무 자주 나타나거나 심하거나 감당하기 힘들다면 장애로 분류될 수 있다. -p25


최근에 불안 장애는 기분 장애(우울증)를 대체하는 가장 보편적인 '마음의 감기'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심리적 장애 증상을 뭉뚱그려 '우울증'이라고 표현하던 시대를 지나 좀 더 세분화하여 불안 장애는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마음의 감기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환경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 있어도 인내와 행복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무력감은 취약성을 자극하기 쉽고 그것의 자연스러운 부산물로서 불안을 유발한다.  - p63


나는 불안감 평균이 높은 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평소에도 불안함이 조금 많다는 뜻이다. 평균이라는 것이 검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어느 정도까지의 신뢰도를 가진 것인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도 나는 다양한 불안을 갖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을 고른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할 '불안'이라면 '잘'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가장 불안을 느끼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경우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을 때는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해진다. 거기에 무력감까지 겹치는 상황이라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압도당하고 마는 것이다.


저자는 압도당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인식이라고 했다.  공황 발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치료한다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감당할 만하거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라고 깨닫게 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에너지(투자)'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불안의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벗어나고 있더라고도 했다.



우리에게는 계획이란 실행 과정에서 마땅히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자각과 유연한 사고가 있어야 한다. 유연성은 신체 건강에 못지않게 정신 건강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계획을 세우고 그런 다음 계획을 바꿀 계획을 세워라.   -p92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내 예측을 빗나간 것이므로 불안했다. 그러나 저자는 계획을 세우고 유연하게 계획을 수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고의 경직성이 불안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 내가 얼마나 고지식한 사람이었나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계획을 잘 세우지도 않지만 그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얼마나 불안했고 그 불안을 온갖 짜증으로 표출하며 주변 사람을 괴롭혔던가. 그래서 더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계획을 세운 다음 계획을 바꿀 계획을 세우라니, 얼마나 기발한 생각인지!





《불안과 잘 지내는 법》은 세 명의 저자가 공저했다. 자신들의 임상 경험을 예로 들며 설명하는데 상담 사례를 읽다 보면 말하는 주체 '나'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환자와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동성인지 이성인지 이해가 잘 안 될 때도 있다. 세명의 저자를 모두 '나'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과 크게 상관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구분을 지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서 불안 장애를 마음의 감기로 표현했듯이 치료를 받는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 주변의 누구나 될 수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례로 보여준다. 우리는 누구나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다만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가 아닌 이들을 위해 스스로 불안을 다스리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들도 소개하고 있다.


불안을 다스리는 두 가지 기본 규칙:

사소한 일에 애태우지 마라
모든 일은 사소하다

《사소한 일에 애태우지 마라》, 리처드 칼슨



평온을 비는 기도 / 라인홀트 리버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저자가 리처드 칼슨의 저서(우리나라에서는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로 출판되었다)와 라인홀트 리버의 시를 인용하며 하려는 말은 간단하다. 사소한 모든 것에 애태우지 말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연연하지도 말라는 것. 모든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반응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불안을 겪는 사람이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 '코로나 블루'라는 이름으로 자주 소환되었다.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과 답답함을 없애버릴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그리고 불안에 쏟을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유도함으로써 조금은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특별히 밑줄을 그어 놓았던 인용은 에르마 봄벡이다. 나처럼 '나의 불안'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여러분에게도 말하고 싶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다.
끊임없이 할 일을 주지만
아무 데도 데려가지는 못한다.
- 에르마 봄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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