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 소고기 국거리를 사러 갔다. 며칠 전 사다 놓은 무 생각이 나서였다. 소고기를 넣고 푹 끓인 뭇국을 떠올리며 침이 고였다. 소고기 뭇국에 필요한 부위는 어디일까?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면 망설이게 된다. 엄마에게 '양지머리'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지만 자신은 없다. 국거리를 어느 부위로 하면 맛있는지 알 길이 없는 나로서는 '국거리'라고 포장되어 있는 팩이 고맙다. 요즘은 어느 부위를 얼마나 달라는 주문을 하지 않아도 제각각의 양으로 담아 포장 진열해 두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양이 든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국거리' 팩 안에 든 고기가 무슨 부위인지 몰라도 된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집에 돌아와 아직은 싱싱하게 버티고 있던 무를 손질해 뭇국에 넣을 크기로 써는데 그 소리가 무척 낯설면서도 따뜻하게 들린다. 사각사각, 스걱스걱. 이렇게 신선한 채소를 썰어서 요리한 게 언제였더라. 서걱서걱 소리를 들으며 무를 써는데 어릴 적 엄마가 무 썰던 소리가 생각났다. 두꺼운 나무 도마 위에 놓인 무가 썰릴 때마다 무의 소리뿐 아니라 칼이 도마에 닿으며 내던 소리까지. 그건 마치 도마가 텅, 텅, 하고 우는 소리 같았다.
엄마가 깍두기를 담근다고 커다란 대야에 무를 한없이 썰어 넣던 저녁. 또깍또깍 무 써는 소리가 얼마나 군침 돌게 하던지. 네모반듯 조그맣고 일정하게 잘린 새하얀 무 조각을 입에 넣으면 그게 그렇게나 좋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연신 무를 집어먹는 나를 엄마가 나무랐다. 날 무 많이 먹으면 배앓이한다고 그만 먹으라고. 아랑곳 않고 날 무로 배를 채운 나는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며 미련하다고 타박을 주었다. 그런 적이 한 번은 아니었을 것이다.
깍두기처럼 정육면체가 아니라 납작납작 나박 썰기 하던 무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달고 아삭한 시원함이 입안에 가득하다. 그때 엄마가 썰던 깍두기 무도 이랬을까. 입에 한가득 넣고 씹던 그 날 무도 이런 맛이었을까. 이제는 그 무의 맛도, 엄마가 담가 주었던 깍두기의 맛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는 엄마가 담가 주시는 깍두기를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훅, 끼쳐왔다. 슬픔은, 온전히 슬퍼해야만 치유된다고 했는데. 아직도 활짝 펼쳐 말리지 못한 것 같은 슬픔이 내 안에서 가끔 이렇게 나를 푹 찌르곤 한다.
사 온 소고기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참기름에 볶는다. 고소한 냄새가 나면 납작하게 썬 무도 넣고 볶는다. 겉이 살짝 익으면 물을 붓고 푹 끓인다. 내가 알기로 뭇국은 그렇게 끓인다. 하지만 내가 끓인 뭇국은 늘 무가 덜 익어 어석어석했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끓여야 하는데 뭐든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대충 후루룩 끓이고 마는 까닭이다. 아직 덜 됐나 하면서 오래 끓여봐도 엄마가 끓여주던 뭇국의 맛은 나지 않는다. 엄마가 끓여준 뭇국은 그리도 달짝지근하고 깊은 맛이 났는데. 엄마처럼 흉내는 내지만 나는 아직도 그 맛을 내지 못한다.
아이들도 외할머니의 뭇국을 좋아라 했었다. 이제는 외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맛있는 뭇국을 먹을 수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게 외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맛이야, 하고 아이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아쉽다. 지금도 아이들은 내가 끓여 준 뭇국을 탐탁지 않아한다. 제사 지내고 할머니 댁에서 싸온 탕국은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벌써 아이들에게 외할머니의 음식은 잊혔을 것이다. 세월이 더 지나면 내 뭇국에서도 그렇게 깊은 맛이 날까. 내가 엄마의 따뜻하고 구수한 뭇국을 기억하듯이 내 아이들도 훗날 내가 끓여준 뭇국을, 아니 어쩌면 외할머니의 뭇국까지도 그리워하게 될까.